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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풋볼 보헤미안

“(감독으로) 누구를 뽑든 여론은 45대55로 갈릴 것이다. 누가 하든지 55일 가능성이 높다. 50% 이상 지지를 받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5일 천안축구센터에서 열렸던 2024 대한축구협회 한마음 축구대회에 참석해 남긴 말입니다. 한마음 축구대회가 제가 듣기론 대한축구협회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축구대회였다는데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 대회가 한동안 거의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는데, 뭐가 어쨌든 공 하나를 두고 땀을 흘리며 팀워크를 다지는 축구 본연의 재미와 의미를 통해 그간 적대적인 미디어를 어루만지는 게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시기가 시기다 보니 오죽하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서도.

 

어쨌든 정몽규 회장의 말을 계속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표팀 사령탑은 한 팀을 만드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전술적인 부분들은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전력강화위원회에도 '누가 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먼저 정한 후 절차적 정당성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우리가 필요한 것이 뭔지 정의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저는 이 말을 접하면서 갑갑함이 밀려오더라고요. 시중에서 말하는 유체이탈화법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굉장히 옳은 얘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먼저 정한 후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 알맞은 감독을 영입해야죠.. 문제는 이 프로세스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이후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겠죠.

 

이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카타르 월드컵 기간 만났던 정 회장과 가벼운 티타임에서, 더 가볍게 새 감독 찾느냐라고 농담 한 번 한 게 감독 선임으로 이어졌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클린스만 감독 체제가 처참하게 무너진 후, 다섯 달 동안 새 감독을 뽑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절차적 정당성을 기존의 협회 내 질서 내에서 다시 곧추세우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옳은 얘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에 정당성에 실립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는, 나름의 문제점 분석은 더 갑갑하게 만듭니다. 기억을 되짚어봅시다. 홍명보-김판곤 감독 체제에서 한국 축구가 시도했던 건 이른바 능동적 축구(proactive football)’였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소위 강호라 불리는 팀과 대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축구를 하자는 대전제를 깔았습니다. 그 대전제 하에서 여러 지도자가 거론되었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최종 낙점되었습니다. 그리고 벤투 감독 재임 기간 내내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서 정말 그런 축구를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꽤 시끄러웠죠. 저도 그때 솔직히 이 능동적 축구의 성공 가능성이 꽤나 부정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생전 볼 수 없었던 그림이었기에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앞섰거든요.

파울루 벤투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풋볼 보헤미안

그런데 이 논쟁 여부를 차치하고, 벤투 감독 선임 과정만 놓고 보면 정 회장의 말처럼 굉장히 깔끔했습니다.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먼저 정하고, 그에 걸맞은 게임 플랜을 가진 감독을 데려왔으니까요. 결과까지 따랐으니 지금도 홍명보-김판곤-벤투 체제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서 호평을 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과연 대한축구협회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나요?

 

벤투 감독 체제에서 악착같이 고수했던 능동적 축구를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경기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축구(reactive football)를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며, 축구는 결국 결과론이기에 성과가 따라온다면 이 축구 철학 역시 능동적 축구만큼 찬사 받을 수 있겠죠.

 

제가 따지고 싶은 건 벤투 감독 부임 후 새 사령탑을 뽑을 때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그 방향성을 정했는지 여부입니다. 그리고 과연 정몽규 회장의 탑다운 오더 방식이 그 방향성을 정하는 정당한 수단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정 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부산 아이파크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팬들의 반발은 둘째치고, 어쨌든 가장 큰 권한을 지닌 구단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 자기 구단을 죽이든 살리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혹자는 언젠가 제게 정몽규 회장을 두고 협회를 부산 아이파크 운영하듯이 한다라고 비판하던데, 그게 빈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더 갑갑한 건 지난 620일 대한축구협회가 2024 KFA 한국축구 기술철학 발표를 통해 향후 어떠한 축구를 할 것인지 방향성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무려 304.2mb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인데, 정작 정몽규 회장은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합니다. 파일 용량을 보니 협회 기술국 실무자들 꽤나 고생했을 듯한데 한 방에 힘 빠지게 만드는 발언이네요. 분명히 회장에게 보고가 되었을 텐데, 앞으로 이런 축구를 하겠다는 방향성을 확립한 이 사안에 대해 회장이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0일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기술철학 발표 대 언론 브리핑 자료

이런 걸 보면 전력강화위원회도 파행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담당 파트에 전문가가 백날 치열하게 토론해서 안을 만들어 가면 뭐하나요? 해당 파트 비전문가인 회장은 사안에 대해 인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은 이미 내면에서 결심을 내리고 바라는 안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실무 책임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언급하기 전에,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절차가 있는지부터 의심이 듭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8강에서 이란에 밀려 탈락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던 일본이 대회 내내 난맥을 드러내다 비슷한 체급의 팀을 만나자 탈락했으니 일본 축구계가 받았을 충격이 꽤나 컸을 겁니다. 그때 타지마 코조 일본축구협회 회장은 곧장 믹스트존에서 기자들을 만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내비치며 계속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일본 내 부정적 여론은 정말 하루 이틀 만에 금세 사라졌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마담 팡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태국 축구의 대모로서 한국 팬들에게도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린 누안람 란삼 태국축구협회 회장도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최종예선행 실패가 확정됐을 때 대국민 사과를 하며 선수단을 보호했습니다. 홈 한국전에서 0-3으로 패배했을 때도 고개를 숙였죠. 중국에 승자승 원칙에 밀려 최종예선행에 실패했던 태국 내에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단, 그 선수단을 위해 앞에 나와 수습하려 했던 회장에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리더십이라는 건 이런 겁니다.

 

모두가 알듯이 클린스만 감독이 떠난 후 5개월 동안 한국 축구 대표팀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우리 회장님, 그간 잘 안 보이시다가 오늘은 얼굴을 내놓고 본인 생각을 얘기하신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접하니 또 갑갑해집니다. 어쨌든 시간은 갑니다.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아직은 정몽규 회장의 시간입니다. 인내의 시간, 정몽규 회장이 이길까요? 여러분이 이길까요? 어질어질합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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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보헤미안입니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기 전, 오래도록 알아온 현지 스포츠 전문 방송국 아스트로 아레나의 피나 나즈롬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파이살 할림이 테러에 희생당한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는 정보였습니다. 현지에서는 미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선수가 도대체 누구냐 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말레이시아전에서 기막힌 플레이로 한국 골망을 가른 선수입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한국전서 득점 하는 할림 @AFC, 아스트로 아레나

득점 장면을 보니 기억이 나실 듯하여 계속 얘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이 선수는 이 경기로 완전히 국민적 영웅이 됐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이후 페널티킥을 얻었을 때 손흥민이 심판에 항의하자, 곧바로 손흥민에게 이건 페널티킥이 맞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따로 잡히기도 했는데요. 세계적 스타에게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까지 얻었고, 결과적으로 한국전 3-3 무승부로 말레이시아가 아시아를 놀라게 하면서 핵심 스타 중 하나로 높이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조호르 다룰 탁짐의 대항마로 꼽히는 슬랑오르 FC의 간판스타이자 충신이라 팬들에게 평소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받는 선수기도 했습니다.

 

아시안컵 이후에는 각종 방송 출연과 광고 촬영을 하는 등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슈퍼스타 대우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이 걱정이 됐는지 노파심에 광고 촬영 좀 줄이고 축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따로 전했다고 했을 정도로 정말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요. 이 선수가 지난 5월 쿠알라룸푸르 근교 도시 페탈랑 자야의 한 백화점에서 생면부지의 범인에게 염산 테러를 당했습니다. 슈퍼스타이자 축구 영웅에서 선수 생명마저 위태로운 비극적 인물이 되고 만 셈인데요. 이 소식은 한국에서도 크게 조명이 된 바 있습니다.

파이살 할림 기자회견 @슬랑오르 FC

이날 기자회견은 얼굴을 포함한 온 몸에 4도 화상을 입고 무려 네 차례 대수술 끝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것이라 온 말레이시아가 그를 주목했습니다(사족인데, 할림의 수술을 맡은 의사가 한국 한양대 유학파 출신이라고 합니다). 할림은 이 자리에서 축구 선수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가족의 안전만큼은 꼭 챙겨달라라고 간곡하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섣부른 추측은 자제해달라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음모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소개해드리고픈 음모론이 있습니다. 울산 팬들이라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근 자주 상대했던 팀이라 잘 아실 겁니다. 조호르 다룰 탁짐, 현재 말레이시아에서는 경쟁을 불허하는 최강팀이죠. 엄청난 자금력을 앞세워 자국 스타 선수는 물론 해외에서도 우수한 선수를 싹쓸이해 이런 팀을 만들어낸 것인데요. 실질적인 구단주라 할 수 있는 툰쿠 이스마일 이드리스 말레이시아 조호르주 왕세자가 배후가 아니냐는 지목을 받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머물면서 현지 기자들이 차마 기사는 쓰지는 못하지만 제겐 슬며시 얘기를 하더라고요. 모 기자는 툰쿠 이스마일 이드리스 조호르주 왕세자와 텡쿠 아미르 샤 슬랑오르주 왕세자가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은 사촌지간이며, 툰쿠 왕세자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슬랑오르 에이스인 할림을 영입하려다 할림이 충성심을 발휘하며 이를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시즌 개막이 임박하자 할림에게 사람을 보내 해치우려고 했다는 게 대체적인 골자입니다.

체포된 용의자 @말레이시아 우투산 TV

한 팀의 구단주가 경쟁팀의 에이스를 자객을 보내 선수 생명을 끊어놓으려고 했다는 이 막장 음모론이 현지에서 설득력을 얻는 건, 용의자가 체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 처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손흥민급 인기를 가진 선수가 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백주대낮에 이런 테러를 당했다면? 아마 나라가 완전히 뒤집혀지겠죠? 당연히 경찰에서도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 신상까지 공개했을 겁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선 나라가 뒤집히는 것까지는 됐는데,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까지 체포하고도 실제 구속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곳의 축구계와 미디어에서는 암암리에 조호르주의 왕자가 이런 암살극을 벌인 게 아니냐는 말을 흘리고는 있습니다만, 대놓고는 못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문을 퉁쿠 조호르주 왕자가 들었던 모양입니다. 사흘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할림은 좋은 선수입니다. 그는 제게 위협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저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슬랑오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나요? 제가 할림을 없애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조호르 다룰 탁짐은 작년에 슬랑오르전을 세 번 치러 4-0, 4-0, 2-0으로 이겼습니다. 할림은 그 경기에서 뛰었습니다. 그는 제겐 위협이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참 부끄럽고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염산 테러는 약한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없애려 한다면, 우리는 진짜 철저하게 처리할 겁니다. 그런 일이 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이없는 일입니다.”
“최근에 슬랑오르의 팀 버스가 자카르타에서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것도 제 탓입니까? 모든 게 제 잘못일 수 없잖습니까? 할림은 좋은 사람이며, 위협이 되진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심증이 있고, 훗날 물증이 나와도 퉁쿠 왕자를 말레이시아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도 몰랐는데, 말레이시아는 연방 국가이며 각 주 정부를 이루는 주의 왕실이 사실상 권력의 핵심이라네요. 그래서 축구적 관점에서는 대표팀보다는 각 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클럽이 더 위상이 높다고도 합니다. 이 로얄 패밀리는 사법 처리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째 할림을 염산으로 공격한 이 사건은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서고, 그 다음에는 한국이었다면 절대 이런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어쨌든 할림이 건강하게 피치에 돌아오길 바랍니다. 김판곤 감독은 12일 풋볼 보헤미안과 만난 자리에서 건강하게 축구 선수로서 복귀한다면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 엄청난 원동력이 될 것이며, 국가적 영웅이 될 것이라며 제자의 조속한 회복과 쾌유를 빌었습니다. 비록 흉터는 남았지만, 정말 축구 선수로 돌아오면 국가적 영웅이자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될 듯합니다. 응원합니다.

할림의 한국전 득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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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 @풋볼 보헤미안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2024년 6월 11일 저녁 7시(현지 시각)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입니다. 이 경기장은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며, 전 세계에서는 아홉 번째, 동남아에서는 가장 큰 경기장입니다. 총 수용 관중이 8만 7,000여 명에 달합니다. 이곳은 2007 AFC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기도 하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당시 한국이 이곳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에서 패한 곳입니다. 여러모로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매머드 스타디움이자, 아시아 축구계에서도 손꼽히는 주요 스타디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에서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6일 밤 10시(한국 시각)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D그룹 6라운드 대만과 대결을 가집니다. 말레이시아는 이번 대만전에서 최대한 많은 득점(정확히는 최소 7골)을 성공시키고, 같은 시각 무스카트에서 벌어지게 될 경기에서 키르키스스탄이 오만에 지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최종 예선에 진출합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이곳에 킥 오프 서너 시간 전에 도착해 주변을 한번 둘러봤는데요. 동남아하면 축구 인기가 최고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킥오프 한 시간 전에 미디어 트리뷴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조금 실망인데요. 과연 서울이면, 방콕이면, 싱가포르이면, 중국이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 정문 @풋볼 보헤미안

킥오프 한 시간 전인데도 입장한 관중이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말레이시아축구협회(FAM)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1만 2,000여 명의 관중이 예매를 했다고 하는데요. 워낙 통이 큰 경기장에 1만 2,000여 명이 들어와봤자 기별이 갈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전체적으로 경기장 주변에 우리가 생각하는 축제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게 안타깝습니다.
 
사실 경기 하루 전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상대로 우리가 가진 환경적 요인을 앞세워 도박을 걸어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인즉슨, 말레이시아 특유의 더위와 광적 열기로 유명한 울트라스 말라야(한국의 붉은 악마와 같은 대표팀 서포터스)의 응원을 앞세워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겠다는 것인데요. 경기가 시작되어야 알 수 있겠으나, 날씨는 비까지 내려 선선한데다 관중도 생각보다 적어 과연 그 뜻이 실현될지 의문입니다.
 
사실 기자회견 후 말레이시아의 최대 스포츠 채널 아스트로 아레나 TV의 한 남성 기자와 만난 적이 있는데요. 이 기자가 말하길 “내일 경기에 관중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이다. 1만 2,000여 명이라는데 한 7,000명 예상한다”라더군요.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평일 저녁 경기에 교통 체증 때문에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 그렇구만”
 
그리 답하긴 했습니다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한국과 중국의 경기도 평일 저녁 경기이고, 한 번 경기하면 서울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길이 꽉 막히는 건 매한가지니까요. 그래서 서울에서 있을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 6만 관중 매진 소식을 전하니 놀라더군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확정 직후 김판곤 감독 @말레이시아 뉴 스트레이츠 타임즈

사실 김판곤 감독은 지난해 1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풋볼 보헤미안이 만났을 때 관중 수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김 감독이 말레이시아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관중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쿠알라룸푸르 원정을 왔을 때, 울트라스 말라야의 광적 응원에 홀딱 반했다네요. 그 응원을 받으며 팀을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울트라스 말라야는 김 감독 부임 후에도 변함없이 엄청난 응원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전 때 제법 큰 규모의 원정 응원단이 경기장 분위기를 휘어잡았었습니다.

그때 말레이시아의 골이 터지자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를 중고로 판매하고 카타르행 티켓값을 마련해 그 자리에 온 한 남성팬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클로즈업이 되기도 했죠(이 남자의 사연이 알려져 당시 한국전 득점자였던 파이살 할림이 사비를 털어 새 오토바이를 사줬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취재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말레이시아가 대회를 떠나기 전까지 도하의 중심지 수크 와키프는 말레이시아 팬들의 응원 때문에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워낙 유명하다기에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을 보고 싶어 경기장을 찾은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 감독은 바로 그런 서포터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는데요. 문제는 울트라스 말라야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대만, 키르키스스탄, 오만이라 관심도가 덜한 것도 약간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팀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건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한참 글을 쓰다 보니 킥 오프 40분 전이네요. 지금도 이렇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팀의 성적? 말레이시아축구협회의 프로모션 능력 부족? 그냥 팬들의 무관심? 어찌 됐든 최종예선에 가냐마냐 하는 상황인데 분위기가 너무 차가운 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기적이 일어나 말레이시아가 최종예선을 가는 그림이 연출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까요? 이곳에서 지켜보겠습니다.
 

국가 연주 리허설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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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한 방으로 입국이 가능한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티켓 @풋볼 보헤미안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싱가포르전 7-0 대승 이후 여러 이야기를 뒤로 하고 현지를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저는 지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왔습니다. 뜬금없이 쿠알라룸푸르냐고 싶으실지 모르겠는데, 오는 11일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에서 있을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D그룹 최종 라운드 말레이시아와 대만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 더 정확히는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김판곤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5라운드가 끝났을 때 여러 매체에서 보도가 나갔듯이,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빈 말로도 좋지는 못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5라운드 키르키스스탄 원정에서 1-1로 비겼는데요. 무조건 이겨서 자력 진출 기회를 살려야 했던 이 경기에서 승점 1점에 그친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경기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한 레벨 위라는 키르키스스탄 원정에서 승점을 가져온 것에 의미를 부여할 만합니다만, 상황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승점 7점으로 현재 D그룹 3위인데요. 승점 10점으로 2위 키르키스스탄을 뒤쫓고 있습니다. 골득실은 6골이나 차이가 납니다. 일단 말레이시아는 같은 시각 무스카트에서 킥오프할 오만-키르키스스탄전에서 오만이 이긴다는 가정 하에 대만을 상대로 이 골 득실을 만회할 수 있는 대량 득점 승리를 해야만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5라운드 현황 @google

한국이 속한 C그룹에 비교한다면 태국과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룹 최약체와 홈에서 싸우며 같은 시각 부담스러운 원정을 치러야 하는 2위의 패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레벨이 높은 미션이지만요.  긍정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그리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든 말레이시아의 최종예선행 확률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현지의 기대치가 꽤나 높습니다. 하리마우 말라야라는 국가대표팀 서포터스의 광적 열기로도 유명한 이곳 말레이시아는 이웃 나라 인도네시아처럼 뭔가 가시적 성과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데요. 문제는 김 감독을 둘러싼 상황과 말레이시아의 분위기가 꽤나 묘하다는 겁니다.

 

당초 김 감독은 이번 키르키스스탄 원정을 굉장히 공들여 준비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이곳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났을 때, 김 감독은 2차 예선 여섯 경기 중 이 키르키스스탄 원정을 콕 짚을 정도였는데요. 아마도 오만이 1위를 가져간다는 가정 하에 키르키스스탄과 2위 다툼을 벌이게 될 것인 만큼, 최대한 빨리 대표팀을 소집해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전세기 편으로 쿠알라룸푸르와 왕복해서 마지막 대만전에서 승리해 최종예선 티켓을 따낸다는 플랜을 세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났던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 @풋볼 보헤미안

그런데 이곳 말레이시아의 스포츠 방송 채널인 아스트로 아레나 TV의 피나 나즈롬 기자에게서 꽤 황당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해 10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관련 기자회견 때문에 도하에 갔을 때 만나 친분을 쌓게 된 말레이시아의 축구 전문 기자인데요. 그녀가 말하길 전세기 편으로 키르키스스탄 원정길에 올랐던 김 감독과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기가 끝난 지 23시간 동안 현지에서 체류하다 현지 시각으로 8일 새벽 230분 즈음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김 감독에게도 연락을 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싱가포르 원정을 마친 한국 선수단은 경기 직후 서너 시간 만에 곧장 직항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는 것을 떠올리면, 말레이시아 선수단은 그야말로 지옥의 원정길 때문에 진을 다 뺀 셈입니다. 심지어 사실상 하루라는 시간을 이역만리의 땅 키르키스스탄에 버리고 와버렸습니다.

 

가뜩이나 핵심 선수가 테러를 당하거나 주전 공격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지고, 심지어 몇몇 클럽들이 차출을 반대하는 바람에 조기 소집 효과도 전혀 누리지 못한 김 감독 처지에서는 또 하나의 악재를 안게 된 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김 감독에게도 과연 기적이 일어날지 한번 현지에서 지켜보고 싶어 귀국하지 않고 말레이시아로 들어왔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11일 오전 11시 말레이시아축구협회(FAM) 본부 건물 강당에서 대만전 사전 기자회견이 있고, 8시부터 쿠알라룸푸르 근교 도시 샤 알람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 시설인 파당 위스마 FAM에서 대만전 대비 최종 훈련(15분 공개)이 있을 예정입니다. 거기에 한 번 가볼 생각입니다

 

제가 한국어로 이 포스트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디어 등록 등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준 피나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한국에 놀러왔을 때 사준 산곰장어로 퉁쳤으면. , 그리고 한국은 이미 조기 진출을 확정지은 탓에 팝콘을 뜯으며, 한중전을 즐기는 분위기일 것 같습니다. 기세가 워낙 대단한 데다 상대가 심리적으로 완전히 주저앉은 상태이니 무난한 승리가 기대됩니다. 벼랑 끝에 선 말레이시아는 어떠할까요? 확실한 건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곳도 얼마 전 인도네시아처럼 발칵 뒤집힐 것이라는 점이겠죠? 혹시 모르니까 그걸 보려고 왔습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쿠알라룸푸르 파빌리온에서, 솔직히 말레이시아, 8개월 사이에 두 번 올 줄 몰랐습니다.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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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한국전이 벌어졌던 싱가포르 국립경기장 @풋볼 보헤미안

싱가포르에 있었던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이강인의 싱가포르전 이후 믹스트존 인터뷰 거절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강인은 지난 6일 밤 9(한국 시각)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졌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그룹 5라운드 싱가포르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7-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과 더불어 멀티골을 성공시킨 선수였기에, 이름값 여부를 떠나서라도 최고 공헌 선수인 만큼 취재진 입장에서는 반드시 인터뷰가 필요했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기사가 나왔듯이 이강인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풋볼 보헤미안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요. 단순히 이강인이 인터뷰를 거절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 한 문장만 보면 단순히 또 기레기, 또 그러네이런 식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때 현장 상황을 아신다면,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조금 갑갑한 감이 있습니다.

싱가포르-한국전 직후 공식 기자회견 @풋볼 보헤미안

상황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릴게요. 선수 호칭은 빼겠습니다. 경기가 현지 시각으로 10시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은 거의 자정 조금 못 안 되는 시간에 스타디움을 떠났습니다. 본래 계획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는데요. 그래서 당초 취재진은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관계자들과 경기 후 인터뷰 풀 계획(소스 공유)을 짜고 최대한 간결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최대한 선수들이 경기장을 빨리 떠나게끔 배려하고자 한 것입니다. 어찌 됐든 대표팀이 대회에 나가면 취재진도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끝나니 팀이 스타디움을 조금 늦게 떠나게 됐습니다. 공항에서 정처없이 대기하다 일반인들과 섞여 더 피곤한 상황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경기 후 라커룸에서 씻고 대기하는 게 더 낫겠다고 협회 측 관계자들이 판단한 것인데요. 시간적 여지가 생긴 덕에 취재진들은 경기 후에 제법 많은 인물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상 취재진 모두 들어가기 힘들 법한 경기 후 기자회견에 들어갈 수 있었던 덕에 김도훈 임시 감독과 손흥민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고요. 믹스트존에서는 주민규·황재원·황인범·오세훈 그리고 이날 데뷔골을 터뜨린 배준호도 A매치 데뷔골 매치볼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훈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싱가포르축구협회(FAS)에서도 한국 출신 귀화 국가대표 송의영의 인터뷰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이 스타디움을 떠나기 전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는 곳인 믹스트존은 본래 그런 공간입니다.

A매치 데뷔 매치볼을 들고 기념 촬영하는 배준호, 이 볼 싱가포르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챙겨 선물로 줬다고 합니다. @풋볼 보헤미안
싱가포르-한국전 직후 황인범 @풋볼 보헤미안
싱가포르-한국전 직후 주민규 @풋볼 보헤미안

하지만 단 한 선수 이강인만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요. 경기 후 기자회견 이후 팀을 떠날 때까지 약 한 시간 가량 취재진의 믹스트존 인터뷰 요청, 이 요청을 받아들인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담당자의 설득, 이강인의 거절이 오가는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기꺼이 믹스트존에 나타나 경기를 리뷰하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지만, 이강인은 마다한 것이죠.

 

그러다 뭔가 꿩 대신 닭처럼 손흥민이 믹스트존에 나타났습니다. 통상적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선수들은 이미 많은 코멘트를 한 만큼 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취재진도 어지간해서는 기자회견에 나선 선수를 잡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말을 들었으니까요.

싱가포르-한국전 직후 믹스트존 인터뷰에 '또' 응하는 손흥민 @풋볼 보헤미안

참고로 이날 손흥민은 경기 직후 피치에서 방송용 플래시 인터뷰까지 했으니 이날만 세 번이나 인터뷰에 응한 셈인데요. 옥신각신하는 상황을 선수 대표로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인터뷰에도 웃으며 또 나타나는 모습에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단순히 일 차원을 넘어뭐라고 할까요. 인간적인 마음 씀씀이가 보여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강인은 팀 버스가 창이국제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믹스트존에 등장했습니다. 경기 소감이라도 듣고 싶었던 몇몇 기자들이 한 마디 해달라는 말을 간곡히 던졌지만 미소와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냥 버스에 올랐습니다.

 

저는 기자 생활을 십수 년째 하면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봤습니다. 믹스트존 인터뷰가 의무 사항이냐 아니냐 이걸 떠나(본래 의무이지만 사문화된 규정이라고 봅니다. 이걸 가지고 선수에게 페널티를 물게 하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인터뷰에 기꺼이 응하며 자신의 가치를 어필합니다. 혹은 대중들이 가질 법한 오해를 풀려고도 노력합니다.

 

지금은 직접 소셜 미디어로 소통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팬들과의 소통 창구가 바로 이런 미디어와 인터뷰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선수-기자 신분이지만, 사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 인간적인 교감도 많이 나눕니다. 선수든 기자든 결국 감정 가진 사람이기에 이런 소통이 있어야 그릇된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강인이 믹스트존을 그냥 떠나버리는 모습을 두 번 직접 봤습니다. 작년 6월 엘살바도르전, 그리고 엊그제 싱가포르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믹스트존을 통해서 걸어 나간 게 어디냐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의 모 선수는 아예 믹스트존을 거치지 않고 다른 창구로 경기장을 떠나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 선수는 커리어 내내 미디어와 전쟁을 치러야 했고,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선수가 믹스트존 인터뷰를 피하려는 것, 그로 인해 오해가 생긴 미디어가 공격하는 것 이런 악순환의 굴레를 떠나 그냥 서로 만나 터놓고 소통하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차라리 믹스트존에서 기자들을 만나 논쟁하고 마음에 안 들면 ‘기자 갈구는선수가 더 좋습니다.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 서로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있고 오해를 하지 않으니까요. 시쳇말로 그냥 하고 말면 모두가 편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의 생각이었습니다.

싱가포르-한국전 후 경기장을 떠나는 이강인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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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질문에 대부분 짤막한 답변을 남기는 식이었지만, 마음 속에 담긴 감정이 꽤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새로 승선한 스트라이커 오세훈은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세훈은 오는 66일 밤 9(한국 시각)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에서 열릴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그룹 5라운드 싱가포르 원정 경기를 위해 지난 2일 저녁 동료들과 함께 싱가포르에 입성했습니다. 2024시즌 일본 J1리그에서 마치다 젤비아의 돌풍을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오세훈은 김도훈 임시 감독의 호출을 받아 A대표로서 검증을 받게 됩니다.

 

여러모로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이번 싱가포르 원정에 임한 대표팀의 명단은 조금 색다릅니다. 지난 2년간 대표팀 최전방을 책임졌던 황의조와 조규성이 없으며, 그 백업 구실을 맡았던 오현규도 이번에 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에 최고령 A매치 데뷔를 한 주민규가 그나마 연속성을 가진 국가대표 발탁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세훈이라는 새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일단 기뻤지만 명단에 포함됐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제일 먼저 생겼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 나라 대표를 위에서 뛴다는 자체가 책임감을 일단 가장 크게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오세훈의 국가대표 발탁 소감입니다. 오세훈은 2024시즌 일본 J1리그에서 17경기 출전 61도움을 기록하며 쾌조의 페이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력을 보이면 대표팀의 부름을 받는 게 꽤 합당해 보입니다. 그리고 프로 데뷔팀 울산 HD FC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온 후 지금의 경기력을 보일 때까지 2년 동안 꽤나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올해 준수한 경기력과 대표팀 발탁은 오세훈에게는 고무적인 결과물입니다. 더욱이 울산 팬들의 큰 비난을 사며 감행한 이적이었기에 오세훈이 지난 2년 동안 맛본 몰락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세훈에게 너무 치명상으로 남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용병의 삶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오세훈입니다.

“일본 간 거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었는데 일본 가는 그런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 후회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충분히 2년이라는 시간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울산에 그냥 남아있는 게 더 나았던 선택이었을까요? 오세훈은 그래도 일본으로 가는 게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에 가면서 매끄럽지 못했던 이적 과정이 계속 마음에 남았던 듯합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레 J1리그 하위권이었던 시미즈 에스펄스 이적, 게다가 시미즈가 지불해야 했던 바이아웃 금액과 관련한 갈등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세훈과 홍명보 울산 감독의 말이 서로 다르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울산 팬들의 미운 털이 박혔는데요.

 

“아쉽기라기보다 제가 후회를 많이 했었죠. 그리고 울산 팬들이나 감독님을 포함해서 모든 분들에게 죄송했던 것 같아요.”

 

이번 싱가포르 원정을 통해 2년 동안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앓았을 사과를 했습니다. 그래선지 조금은 후련해보이는 표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 6일 싱가포르전에서 보다 건강한 멘탈 상태에서 승부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주민규와 경쟁에서 이겨야겠지만요. 그런데 풋볼 보헤미안이 보기에는 3월에 처음 실험한 주민규와 이제 갓 선발된 오세훈의 출발선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진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대표팀은 임시 감독 체제입니다. 멀리 볼 이유가 없는 김도훈 감독은 당장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 선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시즌 골 수는 오세훈이 주민규보다 앞섭니다.

 

과연 마음 고생이 심했던 오세훈이 다가오는 싱가포르전에서 깜짝 선발 명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세훈은 이런 각오를 남겼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그 각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를 지켜보겠습니다.

“공격수로서 책임감을 다 해서 득점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득점을 떠나 팀을 위해서 희생해서 다 같이 승리하는 게 저의 각오고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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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풋볼 보헤미안 터뷰

 

전남 드래곤즈 FW

존 몬타노

 

2023시즌 전남 드래곤즈는 14득점 14도움을 기록하며 마구 날뛰던 발디비아를 가지고도 승격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플레이오프에 발을 담그지도 못했죠.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지만, 지난해 전남을 설명할 때 발디비아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MVP급 활약을 보이는 선수라도 그저 그 선수에게만 의존해서는 팀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음을 증명한 사례가 아닐까요?

 

하지만 올해 2024시즌의 전남은 다를 겁니다. 발디비아는 지난해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뛰어납니다. 52도움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발디비아만 홀로 빛나는 팀이 아닙니다. 무명의 골잡이 김종민이 득점 순위 2(8)에 랭크되어 있으며, 지금 소개할 콜롬비아 출신 공격수 존 몬타노는 도움 순위 1(5도움)에 올라있기 때문입니다. , 이젠 발디비아가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남도 발디비아에만 의존하는 팀이 아닙니다.

 

몬타노의 가세는 여러모로 전남에 큰 힘이 됩니다. 공격수들이 그저 골만 노리고 뒤엉키면 조직력을 살릴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동료를 위한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도우미 구실을 몬타노가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직접 만났던 몬타노는 그게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라며 팀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세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몬타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전남 드래곤즈 소셜 미디어

K리그가 마음에 듭니다

 

Q. 반갑습니다. 전남 유니폼을 입고 처음 경험하는 K리그 무대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떠하세요?

반갑습니다. 일단 저는 전남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매우 편안하고, 매 순간을 즐기고 있죠. 다른 문화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일하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때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한국에 오자마자 태국으로 가야했는데, 조금씩 잘 적응했다고 봅니다. 한국 문화를 조금 배웠는데 매우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어 신께 감사드립니다.”

 

Q. 한국 생활은 어떠한지?

한국은 매우 평화롭고, 매우 윤리적이며, 존중을 중요시하는 나라인 것 같네요. 그리고 매우 안전한 나라입니다. 콜롬비아에선 파티를 즐기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같아요. 이런 한국 문화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기술, 문화 등 많은 면에서 더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Q. 직접 몸으로 겪어본 K리그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꽤 많은 경기를 뛰었는데, K리그는 상당히 강도가 높고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 매우 전술적인 리그로, 신체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리그이며, 상당히 강도 높습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더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뛰면서 K리그를 더 잘 알게 됐습니다. K리그가 마음에 듭니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여 팀 목표와 개인 목표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Q. 다른 나라의 리그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저는 콜롬비아·미국·엘살바도르 등 여러 리그에서 경기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강도입니다. K리그는 선수들이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압박하며, 전술적인 면이 매우 강합니다. 제가 뛴 중미 무대에서도 이런 경기가 종종 있지만 대개 볼을 가지고 정지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개념 자체가 다른 축구인 것 같아요. K리그가 훨씬 더 강하고, 훨씬 빠릅니다. 그런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축구는 더 느리고, 여기는 더 빨라요.”

 

Q. 피지컬적으로 힘들지 않았는지?

어느 나라에서 뛰든 신체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봐요. 저는 늘 수준 높은 나라에서 경기하고 싶었습니다. 흥미로운 점도 많아요.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개인적으로 발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전남 드래곤즈 소셜 미디어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항상 팀이 승리하는 것

 

Q. 공격 포인트(25도움)를 많이 만들어내며 빨리 적응하고 있습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팀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도움을 주는 걸 좋아하고, 골을 넣는 것을 좋아하며, 경기에서 뛰는 걸 좋아합니다. 경기를 잘 하지 못하면 집에 가서 조금 슬퍼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거든요. 팀을 먼저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항상 전술적인 움직임을 통해 팀을 돕는 걸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Q. 지난해 K리그2 MVP였던 발디비아와 함께 경기하고 있습니다. 호흡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일단 저는 발디비아를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클럽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해왔고, 작년에는 역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발디비아는 매우 존경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발디비아를 돕고, 발디비아뿐만 아니라 모든 팀 동료들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국에 온 이유입니다.”

 

팀 동료들이 더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팀에 왔습니다. 예를 들어 발디비아가 작년에 10골을 넣었다면 올해는 15골을 넣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이곳 한국에서 내가 바로 존 몬타노라고 말하고 싶다거나, 오로지 저만 생각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절 매우 행복하게 만듭니다. 팀이 점점 더 나아지도록 기여하는 것이 저의 초점입니다. 어쨌든 발디비아는 매우 존경받고 있으며, 중요한 선수입니다.”

 

Q. 전남이 K리그2에서 2위를 기록 중입니다. 이 순위를 유지하고 싶을텐데요.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2위인데, 이를 유지해야겠죠. 항상 상위권에 있고자 하는 욕망을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이 순위에 있는 게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상위권에 있는 게 매우 즐겁고 유지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Q. 승격을 간절히 바라는 전남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항상 우리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은, 아름다운 팬들입니다. 매우 귀여워요.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계속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목표인 승격을 이루기 위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많이 사랑하고 있으며, 모두가 하나 되어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모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뛸 것입니다.”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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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소셜 미디어

풋볼 보헤미안 人터뷰
 
포항 스틸러스 MF
오베르단
 
포항 스틸러스 중원의 지배자 오베르단은 여러모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선수입니다.
 
첫째, 일단 브라질 선수 같지 않습니다. 멀리 네이마르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같은 슈퍼스타를 찾을 필요도 없이, 포항 바로 옆 대구 FC 에이스 세징야만 떠올려봐도 브라질 선수들은 화려하고 눈부시다는 느낌을 주잖아요? 그런데 오베르단은 그 화려함 없이도 축구를 기깔나게 잘한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입니다. 게다가 한국 선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많이 뛰고요.
 
둘째, 이렇게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가 불과 3~4년 전만 해도 프로 레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28세인 선수이니, 20대 중반까지도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는 얘기인데요. 보통 이런 상황이 주어지면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지도자로 전향하거나 아예 축구판을 떠나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축구 선수로서 입지를 다져 지금 K리그 중원을 씹어 먹고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그 오베르단도 프로가 되지 못할 뻔한 브라질 축구판이 새삼 놀랍게 느껴집니다.
 
그 오베르단과 5월 15일 포항 스틸러스의 산실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그의 커리어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이타적인 플레이로 중원을 떠받치는 그 플레이 스타일을 꼭 닮은 겸손한 언행과 태도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었습니다. 오베르단도 잠깐이나마 축구의 길을 포기했었다네요.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주세요.

@포항 스틸러스 소셜 미디어

이제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
 
Q. 포항을 통해 K리그에 입성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한국 생활을 만족하는지?
“일단 작년에는 조금 적응하는 부분도 있었죠. K리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이런 부분에서 좀 적응 기간이 많이 필요해서 조금 천천히 간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완벽히 적응을 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이제 K리그가 돌아가는지, 제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되고 팀을 위해서 어떤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해외 진출이 처음이라 들었습니다. 저도 10년 전에 월드컵 때문에 브라질에 간 적이 있어 아는데 정말 먼 나라더라고요. 이 먼 한국까지 오게 된 결심을 내린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기 전에 브라질에서도 나름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었어요. 나름 잘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꿈 중 하나가 바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었어요.”
 
“때마침 이런 좋은 제안이 와서 올 수 있게 되었고, 또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여러모로 이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생각도 많이 해봤는데, 삶의 질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브라질보다 훨씬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이 들더라고요. 해외 진출이라는 제 꿈을 이루고 싶었고, 정말 좋은 조건이라 결정하게 됐습니다.”

오베르단의 운명을 바꾼 카스카베우 입단식 사진 @카스카베우 홈페이지

축구를 한 달 정도 그만 뒀었다고?
 
Q. 프로필을 살펴보니 25세 이전에는 세미 프로 클럽에서 뛰었더라고요. 브라질은 정말 축구를 미친 듯이 좋아하고 잘하는 나라로 유명하잖아요? 20대 중반까지 프로 레벨 선수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음… 처음에 히우 브랑쿠라는 정말 작은 팀에서 한 4년 정도 했는데, 그때 이제 첫째 아들도 태어났던 시기였어요. 그때 아들 키우는 게 정말 힘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좀 어려워서 축구를 한 달 정도 그만뒀었습니다.”
 
“그리고선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제 카스카베우 구단에서 같이 축구를 다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어요. 거기서부터 이제 조금 축구 쪽으로 잘 풀리기 시작했고요. 카스카베우에 들어감으로써 피게이렌시라는 팀에 들어가게 됐고, 그때 해외에서 뛴 경험을 가진 선수들과 대화도 하면서 ‘해외에 나가면 정말 또 다른 좋은 조건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해외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꾼 이유죠.”
 
Q. 잠깐만요. 생계 때문에 축구를 그만 둘 생각을 했다고요? 그렇다면 다시 축구를 하게 되어 성공을 거두는 지금이 정말 행복할 듯한데요.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축구를 그만둘 때는 생계적인 부분이 너무 컸고,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가정을 부양해야 되기 때문에 축구를 다시는 안 한다는 마음으로 나갔죠. 그래서 친구가 하는 그런 배터리 장사 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일을 했어요.”
 
“배터리 가게 일을 하면서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그게 바로 카스카베우라는 팀에서 온 전화였죠.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홀몸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결정할 수 없어서 와이프랑 상의했는데, 와이프가 고민도 없이 ‘네가 하고 싶었던 일 아니냐’ ‘넌 축구하는 거 제일 좋아하지 않냐. 그냥 해. 괜찮다’ 이렇게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마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 결정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 늘 감사합니다.”

@포항 스틸러스

그래서 포항의 제안이 기뻤다
 
Q. 그토록 어렵게 커리어를 쌓다가 포항의 제안을 받았을 때 더욱 기뻤을 듯한데요.
“그냥 진짜 마냥 기뻤어요.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어떤 팀인지는 몰라서 이제 집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꽤 유명한 팀이고 준비된 클럽이라는 거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죠. 그때부터는 이제 운동에 집중했습니다. 한국에 가게 됐으니 좀 오랜 시간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Q.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때 포항 사령탑이었던 김기동 감독이 미친듯이 뛰는 선수를 무조건 잡아오라고 특명을 내렸다고 해요. 그 선수가 바로 오베르단이고요. 그만큼 힘든 역할을 받았을텐데, 안 힘들던가요?
“일단 제 스타일 자체가 원래 좀 많이 뛰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 포지션이 많이 뛰지 않으면 안 되죠. 그래서 체력적인 부분에서 경기 90분 뛰는 동안 많이 뛰는 건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처음에 그냥 한국 왔을 때는 뭐 기후나 시차 적응 이런 부분에서 좀 힘들었지, 그게 적응된 이후부터는 경기하는 부분 같은 건 원래부터 제가 해왔던 것들을 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포항 스틸러스

심플한 플레이를 완벽하게,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포항이 잘하는 것
 
Q. 브라질 선수하면 다들 화려함을 떠올리잖아요. 수비수 같은 경우에도, 이를테면 다비드 루이스처럼 공격적인 선수가 떠오르고요. 그런데 오베르단 선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브라질에는 재능을 타고나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호나우지뉴나 네이마르처럼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항상 심플한 플레이를 완벽하게 하자는 주의로 플레이를 해왔던 선수였습니다. 늘 이런 생각을 가지고 경기를 뛰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네이마르처럼 드리블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잘하는 걸 최대한 잘하고 싶어요.”
 
Q. 현재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K리그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팀도 작년에 FA컵 우승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는데…
“사람들이 절 어떻게 평가하는 것은 차치하고요. 포항이라는 팀은 특정 누군가가 잘하는 팀이 아니고, 팀 전체가 각자 역할을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죠. 저는 작년 후반기에 다쳐서 FA컵 결승전 같은 경기를 못 뛰었는데 그래도 선수들이 우승을 해주었잖아요. K리그1에서도 2위를 해주었고요.”
 
“그런 걸 보면 제가 잘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선수가 함께 노력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게 포항이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희가 상위권에서 계속 경쟁을 하고는 있지만, 제가 벤치에 앉거나 설령 게임을 안 뛰는 상황이 오더라도 포항은 충분히 상위권 경쟁을 할 수 있는 그런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Q. 포항은 오베르단 선수의 축구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로 남을 팀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단 제겐 정말 고마운 팀이죠. 제가 처음으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팀이고, 정말 좋은 기억들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입단 첫 해에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도 탈 수 있었고요. 이런 좋은 경험들을 지금도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절 믿고 기회를 준 포항에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다른 생각하지 않고 정말 고마운 이 팀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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