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불고 있는 축구 한류 소식은 우리 축구팬들을 즐겁게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히 성적만 잘 나오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 여러 측면에서 리더십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신드롬이 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 인도네시아의 신태용 감독이 그렇습니다.
말레이시아에는 김판곤 감독이 있습니다. 현역 시절 부상 때문에 조기에 은퇴한 후 지도자 길을 일찌감치 걸어 홍콩과 한국을 거쳐 지금은 말레이시아 축구의 수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김 감독 역시 말레이시아 축구팬들을 여러 차례 놀라게 한 전적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가 바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전이었죠. 객관적 전력상 두세 수 위라 평가받는 한국 축구를 상대로 말레이시아는 여섯 골을 주고받는 대난전 끝에 3-3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대회에서 일찌감치 2패를 당하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던 말레이시아를 이끌고 조국 한국과 대결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펼쳐 보이며 말레이시아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김 감독의 주가도 현지에서 크게 치솟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 감독을 둘러싼 상황은 굉장히 좋지 못합니다. 이미 풋볼 보헤미안은 베스트 일레븐을 통해 김 감독의 현지 활약상을 여러 차례 소개해드린 바 있는데요. 최근에는 한국전 득점자인 파이살 할림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 네 명이 강력 범죄에 피해자가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강도, 절도 등 선수들이 크게 피해를 입고 있는 일이 자꾸 벌어졌는데요. 한국에서는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최근 한달 사이에 네 번이나 일어났다는 점에서, 풋볼 보헤미안은 사건 배후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마저 듭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상식선에서는 개연성이 너무 없거든요.
이런 악조건 속에서 김 감독의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6월에 에정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D그룹 2연전을 준비합니다. 말레이시아는 6일 비슈케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키르키스스탄을 상대로 원정 경기를 치른 뒤, 11일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에서 대만과 대결합니다. 말레이시아는 키르키스스탄 원정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점에서 총력전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기 준비가 순탄하지 않습니다.
당초 말레이시아축구협회는 말레이시아 리그 사무국과 협력해 조기 선수 차출을 유도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리그는 2024년 여름부터 추춘제로 전환하는 터라 지금 경기 일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해외파가 거의 없는 말레이시아 선수단의 특성상 김 감독이 즉시 전력감을 대거 불러들여 조기에 담금질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는데요.
현재 말레이시아 리그 양대 강호라 할 수 있는 조호르 다룰 탁짐과 셀랑고르 FC가 선수 조기 차출을 거부해 반쪽 스쿼드로 키르키스스탄 원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FIFA A매치 차출 규정에 의거해 선수를 보내줄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런 일정도 없는 상태인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이 두 클럽은 데리고 있는 선수들이 범죄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슈퍼컵 경기도 없어졌다는데요.
대표팀에 합류하면 말레이시아축구협회의 관리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선수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은 김 감독 처지에서는 속이 쓰릴 듯합니다. 비교하는 건 그렇지만, 참고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신 감독이 차출은 물론 본래 인도네시아 국적이 아니었던 유럽 선수들까지도 적극 귀화시키며 감독이 바라는 선수를 데려오고 있습니다. 한국 지도자가 동남아에서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마법사가 아닙니다. 과연 김판곤 감독이 이 고난을 뚫고 팀을 최종 예선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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