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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드디어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지난 202478일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을 제75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음을 알린 후, 3주가 흐른 시점에서야 대표팀 새 출범을 알리는 취임 기자회견을 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홍 감독이 공식적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에 대한 소견을 어떻게 밝힐 것인지에 대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국정감사까지 거론될 정도로 가뜩이나 분위기가 최악인 터라 반전을 시킬 만한 동력이 이번 인터뷰에서 나올지 애당초 의문이었고, 막상 기자회견이 끝나니 실제로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그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특히 주목받았던 멘트를 정리하고 제 생각을 남깁니다. 가장 납득이 안 되는 그의 말은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울산과 K리그 팬들에게 죄송하지만, 대표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홍명보입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5개월 동안 여러 논란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K리그 팬들과 약속을 저버려 미안함과 무거운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동안 큰 성원을 보내주신 울산 HD 팬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려고 합니다. 저는 울산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뜨거운 지지 덕에 다시 감독으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택이 팬 여러분에게 실망감을 드렸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울산, K리그 팬들께 깊은 용서를 구하며 어떤 질책과 비난이든 받아들이고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실망하신 팬들에게 용서 받는 방법은 제가 제 자리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습니다.”

 

홍 감독은 자신의 취임사 첫 머리에 K리그 팬과 울산 팬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내용을 채웠습니다. 하지 않겠다고 공석에서 대놓고 선언했으나 이를 손바닥 뒤집듯 번복해버린 것에 대한 대응이었는데요. 풋볼 보헤미안은 홍 감독이 요즘 사회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사과를 한 것 같습니다. 그냥 어떤 질책이든 비난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요?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 그러니까 대표팀 성적으로 용서를 받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K리그와 대표팀은 한국 축구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에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맞습니다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저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K리그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한 참입니다. 하지만 대표팀이 성적을 내면 그 분위기가 K리그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그래서 그게 K리그가 대표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되는 건 아닙니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K리그와 홍 감독을 빼앗긴 울산 팬들 중 대다수는 대표팀이 무슨 성적을 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홍명보 감독 @YTN 캡쳐

시끄러웠던 지난 과정을 떠올려볼 때, 심지어 말 뒤집기와 거짓말 논란이 있었던 홍 감독의 상황에 더 주목해서 전망하자면, 많은 K리그 팬들이 설령 대표팀이 좋은 성과를 낸다고 치더라도 그건 대표팀의 성공이자 홍명보 감독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K리그와 울산의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외려 모두의 박수와 격려를 받아야 할 대표팀을 적대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대표팀을 응원해달라? 팬들의 굉장한 거부감을 사는 발언이 아닐까요?

 

지금 상황은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홍명보 감독이 언제든 한 번은 더 대표팀을 맡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대표팀은 의리 축구 논란으로 경기 외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고 본선으로 향했고, 풋볼 보헤미안도 정말 많은 비판 기사를 쏟아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를 어느 정도 이해를 했습니다.

 

그때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준비 기간이 1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월드컵 본선이라는 거대한 과업을 해낸다? 홍명보 감독 처지에서는 자신이 잘 아는 선수로 승부를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전 당시 홍 감독의 선택이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설령 따가운 질타가 있어도, 외부의 비판을 통해 내부를 단결한다는 식의 발상이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당시 대표팀 분위기가 그랬고요. 하지만 외부 비판을 똘똘 뭉쳐 버텨내는 팀은 제 기억에는 거의 없습니다. 실력과 결과로 말한다? 어찌 보면 이상일 뿐, 사실 도박에 가까운 노림수입니다.

@쿠키뉴스

그래서 만약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또 잡게 된다면, 반드시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뒤따르길 바랐습니다. 첫째, 넉넉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무엇보다 박수 받는 가운데에서 대표팀이 출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명보호 1기가 이 두 가지가 없어서 망가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때 지도자 홍명보는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시작부터 글렀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 것이고, 더는 이런 기회가 없을테니까요.

 

물론 앞날은 모릅니다. 홍명보 감독이 주변의 우려와 질타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한국 축구의 성공이자, K리그와 울산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대표팀의 성공은 홍명보의 만회이자 성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뿐일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감독 선임은 안 된다고 많은 이들이 얘기했던 겁니다.

 

또 한 가지, 앞으로 모든 경기가 홍 감독을 물어뜯는 소재가 될 것입니다. 좋은 경기력을 통해 이긴다? 선수들이 잘해서 혹은 운이 좋거나 상대가 약해서라는 말이 따라붙겠죠.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기거나 진다? 그러면 모든 화살은 그러니까 홍명보를 뽑은 탓이라고 귀결될 겁니다. 어떤 상황이든 속된 말로 까이게 되는 팀을 맡는다? 그게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맡아선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한국 축구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걸었습니다. 한국 축구를 위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아무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어쨌든 홍명보 감독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꼭 승리하고 성공하십시오. 팬들의 비판이 잠들지는 모르겠지만, 꼭 성공해야 그 수위를 조금은 낮출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이 비난과 비판이 정말 따가울 겁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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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보헤미안입니다.

 

대한축구협회 고위진이 엄청난 헛발질을 또 한 듯합니다. 25일 오전 통신사 매체 뉴시스가 굉장히 재미있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링크부터 달겠습니다.

 

"문해력?"…축구협회 임원 '조롱메일' 일파만파

대한축구협회 고위관계자가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를 조롱하는 메일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축협 고위관계자, 기자에게 조

n.news.naver.com

 

희대의 코미디와 같은 이번 조롱 메일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최근 국회 문체부 감사를 앞두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2일 오후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큰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이와 같은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이례적으로 두 편의 글로 나눠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링크가 안 되는데,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www.kfa.or.kr) 대문에 떡 하니 걸려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미 많은 매체가 보도해서 축구팬들이라면 이미 내용을 잘 알고 있으실 듯한데요.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특혜 채용 시비 등에 대해 아무튼 홍명보 감독 선임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겁니다.

 

이에 통신사 뉴시스가 대한축구협회의 이 성명문에 대한 반박 기사를 올렸습니다. 조롱 메일을 보낸 귀하신 분이 화가 났다는 그 기사입니다.

 

감독 선임 과정 설명한 축구협회…결국 해명 못한 '공정성'

 

m.sports.naver.com

 

이 기사의 요지는 협회가 홈페이지에서 장문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을 설명했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 기사였습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의 모 인사는 두 통의 이메일을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보냈다는데요. 내용은 없이 첫 번째 이메일에는 문해력?’이라는 제목만, 두 번째 이메일에도 역시 내용은 없이 축구협회 설명문을 제대로 정독?’이라는 제목만 붙여 기자에게 항의했습니다.

 

정당한 반론 보도 청구 절차도 없이, 생뚱맞게 기자에게 메일로 다분히 감정풀이식 조롱으로 분노를 표출한 셈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걸 개인 메일도 아니고 협회 공식 메일로 보냈다는 게 그저 황당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이 이메일을 보낸 이는 일개 직원이 아니라 고위 임원입니다. 결국 이 황당한 해프닝에 대한축구협회 측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쯤되면 이 사건을 아예 몰랐을, 그리고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홍보팀 직원이 불쌍할 지경입니다.

뉴시스가 공개한 대한축구협회 고위 임원의 제목만 달랑 붙은 일침 메일 @뉴시스

사실 이번 대한축구협회가 부랴부랴 발표한 두 개의 성명문은 여러모로 이상한 감이 많았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찌됐든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 감독 선임과 관련해 브리핑을 한 바 있습니다. 공식적 채널을 통해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추가적으로, 심지어 나름 더 자세한 내막을 알리려는 자세를 취한 건 예고된 국회 문체부의 감사 예고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미리 밑밥을 깔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한데요. 저 역시 그 고위 임원의 말처럼 문해력이 모자라선지, 아무리 읽어봐도 이 성명문에는 반박할 건덕지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리고 국회 감사에서도 결국 이 성명문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비판하는 국회의원들 앞에서도 문해력이 모자라다는 간 큰 일침을 할 수 있을지 실로 궁금하네요.

 

저는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몇 년 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그건 이렇습니다 라는 성명문 코너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사실이 있는데도 반박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공식 채널로 반응하면 좋은 일이죠. 문제는 이 공식 채널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 성명문 코너는 과거 모 기자가 집요하게 협회 행정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자 적극 대응한다면서 만든 것인데요. 그때도 사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당 기자가 비판 기사만 내놓으면 재빨리 대응하는 게 무슨 커뮤니티 댓글 싸움 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한동안 잠잠하다 최근 협회를 향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 코너가 갑자기 또 바빠지는 듯한 모습인데, 이렇게 글로서 대응할 것이면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반박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게 참 갑갑합니다. 반박의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을 지켜야 할 때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도 대외 대응 능력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요즘 세상은 기록이 지배합니다. 협회의 그 두 개의 성명문도 결국은 도마에 오를 것이며, 이번 귀하신 분의 문해력 일침 메일도 도마에 오를 것입니다.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데, 왜 자꾸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축구협회 @풋볼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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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보헤미안입니다.

 

링크 하나부터 첨부합니다. 먼저 읽어보시죠.

 

협회의 또 다른 악법 'K리그 감독 빼오기'

 

m.sports.naver.com

이 기사, 제가 13년 전에 썼던 겁니다. 최강희 감독을 홍명보 감독으로, 전북 현대를 울산 HD FC로 바꿔서 다시 읽어보세요. 13년 전 기사라는 말이 무색해질 겁니다. 기사 내용 중 규정의 조항 숫자 정도만 제외하면 최근 기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K리그 감독 빼오기의 유구한 전통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2011년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대표팀으로 강제로 데려갔던 저 사례가 처음도 아닙니다.

 

축구올림픽대표 사령탑 부산 박성화 감독 내정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박성화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내정했다.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3일 오전 “협회 내부적으로 박 감독을 올림픽팀 ...

n.news.naver.com

 

20078, 대한축구협회는 박성화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습니다. 참고로 박성화 감독은 부산 사령탑에 부임한 지 고작 15일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K리그 감독 빼오기는 눈치나 타이밍 같은 것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산 아이파크·전북 현대·울산 HD 등 졸지에 감독을 빼앗긴 팀의 팬들이 분노하며 슬퍼했다는 점, 당시에도 이런 사태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미디어의 비판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고개를 슬쩍 숙이며 미안하다.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주어서 감사하다라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 한 마디로 퉁치고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일어날 때마다 축구계가 뒤집어졌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의 이 막무가내 행동은 왜 되풀이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과거 기사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에 이 악법을 버젓이 적어두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제12조 감독 및 코치 등의 선임에 적혀 있습니다. 특히 제2항에 주목하세요.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 중 문제의 조항 @대한축구협회

이번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행을 두고 이 조항에 대한 팬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습니다. 몇몇 매체는 이 규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축구협회가 스스로 이 규정을 없앨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대한축구협회 처지에서는 감독을 뽑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 그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줄 치트키아니겠습니까? 무적의 규정인데, 아무렴 스스로 포기할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풋볼 보헤미안은 이 규정 때문에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이들이 뭉쳐, 반드시 이 악법을 삭제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규정 삭제가 안된다면, 적어도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데려갈 때 구단과 합당한 이적료 혹은 보상금 협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조항 정도라도 추가해야 합니다.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할 주체, 바로 K리그 구단들과 그 K리그 구단의 이익 대변 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입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K리그에 끼치는 악영향이 정말 심대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반드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야 합니다.

울산 HD FC 홈 문수월드컵경기장 @풋볼 보헤미안

물론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계 전체를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에 반기를 드는 구도이기에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대한축구협회와 싸움 붙이지마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일어나는 이런 일 때문에 구성원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저 대한축구협회의 산하단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손 놓을 수는 없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K리그 구단과 그들의 이익 대변 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대한축구협회와 관계보다 그들의 이익과 팬들의 요구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한국 축구를 위한 대의를 위해 아무튼 협조해야 한다? 아닙니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적어도 감독 빼오기 같은 사안은 수평적 관계에서 협의를 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우리네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나치게 순종적입니다. 협회의 조치에 반대 성명을 내놓는 유럽 클럽 혹은 리그 사무국의 사례가 상당히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힘듭니다. 최근 십수 년 사이에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리딩 클럽들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몇몇 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뉴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축구판에 야당이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심지어 거수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건강한 토론이 없고, 토론을 주장하면 삐딱이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그러니 이런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이 규정에 대해서도 반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 뺨 때리는 것 같아 자제하고 싶었지만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울산에 고언을 드릴 것도 있습니다. 김광국 울산 HD FC홍명보 감독을 우리가 보내주는 것이라며 마음 아픈 팬들을 달랬지만, 팬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아무리 포장한다고 한들, 팬들은 멀쩡한 감독을 강탈당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사실 팬들을 달랠 게 아니라 협회에 목소리 높여 반발해야 하는 게 정상적 상황입니다.

 

물론 팬들도 그 이상한 규정 때문에 울산 구단이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잘 압니다. 팬들도 울산 구단이 엄연히 피해자라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울산 구단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을 겁니다. 풋볼 보헤미안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불합리한 상황과 부당한 조건을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추후 울산과 같은 피해를 보는 다른 K리그 구단이 나올 수 있고, 먼 훗날 울산이 똑같은 사례에 또 당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 규정을 뿌리 뽑아야 할 이유입니다.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조공을 바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본인들을 부정하고 팬들의 바람을 외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교훈입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교훈입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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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저는 저한테 계속 질문을 했고 거기에는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는 두려움 그게 가장 컸고요. 또 어떻게 보면 이게 제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이라는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제가 예전에 실패를 한 번 했었던 그 과정과 그 후에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반대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뭔가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이임생 위원장을 만나고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뇌하고 저한테 있어서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습니다. 제가 대표팀을 하지 않는다고, 왜 저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10년 만에 간신히 이제 조금 재미있는 축구도 하고 선수들과 또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가는데 결과적으로는 저를 버리지 않으면 저는 지키고 싶었지만, 저를 버리지 않으면 여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서 저는 그 정말 긴 잠을 못 자면서 생각했던 건…,,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가 우리 팬들한테 가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부분에 제가 마음을 바꾼 상황입니다.” - 2024년 7월 10일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 @풋볼 보헤미안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홍명보 감독이 지난 7월 10일 하나은행 K리그1 2024 광주 FC전 직후 밝힌 대표팀 감독직 수락 이유입니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울산 팬들은 안심해도 된다라는 멘트까지 남겼던 홍 감독이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몰렸고, 그래서 직접 밝히는 소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 감독이 직접 설명하면 상황이 수습될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후폭풍이 진행 중입니다.

 

일단 직접 밝힌 이유를 들어보고, 하루 종일 그의 멘트를 곱씹어봤습니다. 즐겁고 안정적이었던 울산 사령탑을 하던 자신을 버렸고, 이를 통해 지금껏 쌓아온 홍명보라는 인물상도 버렸다. 오직 대한민국 축구만 남았다는 말이 모르는 이들에게는 비장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말 속에는 당위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울산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오랜 꿈이었던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명예 회복 기회가 사실 간절했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솔직하다는 말이라도 들었을 텐데 이번 기자회견은 아쉽습니다.

 

그릇된 말이 모든 걸 망칩니다. 1970년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차드 닉슨이 임기 도중 하야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닙니다. 물론 정적을 겨냥한 도청이라는 것도 엄청난 일이겠지만, 닉슨의 대외적 평판과 신뢰도 추락을 불렀던 건 바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게 선의였던 악의였던, 본의가 있던 본의가 아니었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었기에 속았던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으로는, “세상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미안하지만 이해해라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힘듭니다.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니까요.

 

그래서 홍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은 오해하는 이들이 없도록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1주일 전 울산 팬들을 모두 안심시켰던 발언을 한 직후라 더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자회견은 좀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꽤 길게 마음을 바꾼 이야기를 설명했지만, 저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하고 싶었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홍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뿐만 아니라 축구계 중진들, 그러니까 1990년대에 현역으로 활동했거나 2002년 월드컵 때 최고참이었던 세대들이 한국 축구가 위기에 놓였을 때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남기는 말이 어째 대동소이합니다.

 

많은 비판을 받겠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서, 축구로 받은 사랑을 축구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라는 말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옵니다. 지난 3월 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았던 황선홍 당시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14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며 혜택을 받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황 감독뿐만이 아닙니다. 홍명보 감독도 10년 전에 같은 취지의 말을 했으며, 신태용 감독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비슷한 이유를 내놓았죠.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주변에서 독이 든 성배이며 절대 좋은 제안이 아니니 받지 말라고 했음에도 제안을 수락했다는 후일담도 똑같았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공개한 홍명보 감독 부임 소식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감독은 그 나라 축구계의 만인지상이라는 상징성을 지녀서 그런지 절대 반지처럼 끼고 싶은가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사명감도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명감, 저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반대하는 나쁜 상황, 모두가 받으면 안 된다는 나쁜 제안이라는 이야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홍 감독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홍 감독은 이미 그런 아픔을 10년 전에 겪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거센 비판이 대표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때 그 비판 속에서 내부에서 똘똘 뭉쳐 결속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대표팀을 향해 외부에서 날아드는 타격은 말처럼 견디기 쉬운 게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대표팀은 응원받는 팀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성공을 다질 수 있습니다. 어디 한번 지켜보자는 식으로 지켜보는 분위기 속에서는 말처럼 제 역량을 내기도 힘들고, 설령 조그마한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인정받을 수도 없습니다.

 

10년 전 홍명보호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불과 얼마 전 클린스만호가 그랬었습니다. 상황이 어찌 됐든 결과만 내면 된다? 축구는 늘 결과론에 수렴하기에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결과를 내기 힘듭니다. 어디 두고 보자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을 이들이 감독과 선수들이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이해해 줄까요? 애당초 비토 분위기인데,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홍 감독이 정녕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면, 그리고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정말 성공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번 제안은 피했어야 합니다. 홍 감독은 적정한 타이밍에 대단히 좋은 명분으로 대표팀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10년 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게 홍명보 감독이 일주일 전에 얘기했던 학습효과가 아닐까요?

 

대한축구협회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에게 십자가를 짊어져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는데, 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그저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됐든 이제부터는 매 순간이 살얼음판일 것입니다. 당장 9월부터 진행될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홍명보 감독에게 가장 많은 비난이 쏟아질 겁니다. 10년 전에는 젊은 지도자였기에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홍명보 감독이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 홍명보는 없고 대한민국 축구만 남았다? 55세 홍명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챙겼어야 했던 건 대표팀도, 울산도 아니라 홍명보였어야 했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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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방송 촬영 중 홍명보 감독 선임 소식을 접한 박주호 @캡틴파추호 캡쳐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박주호의 전력강화위원회 운영 실태에 대한 고백이 엄청난 여파를 낳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멤버였던 박주호는 지난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공식 발표에 깜짝 놀라며 그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전력강화위원회의 난맥상에 대해 가감 없이 공개해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대한축구협회는 9일 오후 박주호의 주장에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놀랍게도 국가대표로서 A매치 40경기에 출전하며 헌신했던 레전드 선수에게 법적 조치까지 강구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아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처지에서는 나름 정말 어렵게 모셔온 새 감독에 대한 정당성을 흔드는 발언이었을테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곰곰 생각해봅시다. 박주호는 이번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소위 이권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대부분 현역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거나, 기술 파트에서 소위 한국 축구계 중심에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지난 20236월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지 고작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박주호 처지에서는 이 활동을 통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 멤버 중 누군가가 지도자를 안 해봐서 그렇다라고 그렇다는데, 맞습니다. 그는 아직 관련 파트에서 경험이 없고 그 경험을 쌓으려면 사전에 여러 자격부터 먼저 갖춰야 할 처지입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박주호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서 이번 전력강화위원회 활동을 통해 얻을 게 조금도 없습니다.

 

반대로 이른바 폭로라는 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손해겠죠. 지금껏 다른 축구인 선배들이 그러했듯 침묵하고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겁니다. 축구판, 정말 손바닥만합니다. 소위 라인이라는 게 중요하고, 그 라인을 얼마나 잘 타느냐가 현역 이후의 축구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내부 폭로자 포지션에 선다? 지금처럼 그를 열사로 여기는 팬들의 지지가 흐릿해지면, 남는 건 배신자를 바라보는 눈초리로 바라볼 일부 축구계 선배들의 삐딱한 평가뿐입니다.

대한축구협회

반대로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성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비밀 유지 서약 위반을 근거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대한축구협회가 정말 박주호를 법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팝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자신의 저택이 담긴 풍경 사진을 두고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가 도리어 그 사진이 더욱 외부에 유포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데요. 우리말로 치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 괜히 벌집을 건드려 일을 키우는 어리석은 행동 쯤으로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지금 딱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실 공방으로 흐른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올 텐데, 현재 분위기를 보니 그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가 정말 많을 듯하네요. 꼭 법적 조치하시길 바랍니다. , 그리고 지난 다섯 달 동안 비밀 유지 서약을 어긴 이가 박주호 한 명만은 아니라 그런지, 수많은 이름들이 미디어를 장식한 바 있습니다. 뒤가 아닌 대놓고 말한 박주호 한 명만 잡을 게 아니라 모두 색출하길 바랍니다.

 

궁색하게 비밀 유지 서약을 트집을 잡은 대한축구협회에 꼭 전하고픈 조언이 있습니다. 박주호의 영상에서 소위 킬 포인트는 홍 감독의 선임 소식을 전혀 몰랐다는 박주호의 반응입니다. 그 반응은, 홍명보 감독 선임 이틀 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절차적 정당성에 상당한 결함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뉴시스

사실 전력강화위원회에 남은 다섯 명의 위원에게 임의로 감독을 선택하겠다는 걸 동의를 받았다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의 말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전력강화위원장이든 대행이든 위원들의 일임을 받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면 이렇게 5개월이라는 시간을 끌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풋볼 보헤미안은 이렇게 쉽게 뽑을 감독이었는데 왜 그렇게 시끄러운 다섯 달을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부에 정보 노출이 되는 게 두려웠다? 그걸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까요? 홍명보 감독을 뽑으려고 했다면, 적어도 전력강화위원회를 한 번 더 소집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추인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박주호처럼 갑작스러운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나오지 않을테니까요.

 

또 한 가지, 이런 난맥상이 전력강화위원회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해 3월 승부조작 사면 시도 사건 당시 이사회가 해체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사회를 구성했던 대부분의 멤버들은 억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공지 없이 다들 현장에서 접하고 시쳇말로 어어~’ 하다 가담한 꼴이 되었으니까요.

2023년 3월 사면철회 관련 이사회 풍경. 이후 일부 집행부를 제외한 이사들이 총사퇴했다. @풋볼 보헤미안

그 상황에서도 재빠른 대응을 한 이는 의로운 이가 되었고, 본의든 아니었든 그 분위기에 눌려버렸던 이는 비겁한 일에 가담한 악인 꼬리표를 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사회는 한국 축구를 위한 건강한 제언이나 치열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결정한 일을 승인하게끔 하는 장치였을 뿐입니다. 이사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그들을 통해 뭔가 하려는 요식적 절차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이사들은 그때 사면 번복 후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책임을 졌는데, 정작 그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집행부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았습니다. 지금이야 다 끝난 얘기가 되었지만, 그때 몸담았던 많은 이사들이 졸지에 한국 축구의 해악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던 그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한 박주호처럼, 그들 역시 한국 축구에 보탬이 되고 싶어 이사 제안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거수가가 되고 싶은 이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승부조작 사면에 찬동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그랬던 분위기, 어째 지금 전력강화위원회와 비슷하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정몽규 회장과 집행부가 대놓고 협회를 사유화하는 게 뒷말이 나오지 않을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가 상처받고 판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차피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면, 괜히 그들을 불러서 거수기 세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들 바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방패막이 거수기 세워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시고 그냥 혼자 책임지며 하셨으면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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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의 선임을 알리는 대한축구협회의 오피셜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대표팀행 결심에 많은 의구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8일 대표팀 감독 선임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을 임명했음을 공식화한 바 있습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홍 감독은 강한 어조로 대한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을 비판하며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알듯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 후, 홍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 가장 유력한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였습니다. 본인이 직접적인 제안을 들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후보로 거론되었고, 홍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통해 관심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가장 최근 인터뷰에서는 울산 팬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까지 남겼습니다. 그랬던 홍 감독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3자 시각에서는 엄청난 반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마 그를 지지했던 울산 HD FC 팬들에게는 큰 충격과 배신감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어떤 방법으로 홍 감독을 설득했는지는 차치하겠습니다. 과정이 어찌되었든 홍 감독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남겼던 여러 언행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의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를 언급하며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했는데, 정작 본인도 그 학습 효과를 무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이 학습 효과는 홍 감독의 축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본인 스스로가 더 뼈에 새겼어야 했던 것들입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기자회견에 임한 홍명보 감독 @풋볼 보헤미안

시간을 되돌려봅시다. 2014FIFA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홍 감독은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을 선발해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하며 확고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박주영을 선발한 것은 큰 논란이 될 만한 일이 아닙니다. 1982FIFA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엔초 비아르초트 이탈리아 감독이 토토넬로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2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 파올로 로시를 선발해 월드컵 우승을 이룬 사례도 있습니다. 로시는 아예 득점왕까지 차지했죠. 아무리 좋지 않은 여건에 놓인 선수라도 그의 실력을 믿는다면 감독은 그 선수를 선발할 수 있습니다. 선수 선발은 어찌되었든 감독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을 선발했을 때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홍 감독이 소속팀에서 정기적으로 출전하는 선수에게만 대표팀의 문호가 열려 있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홍 감독은 본인의 선수 선발 원칙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런데 박주영을 선발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뽑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의리 축구논란이 시작되었고, 이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 감독의 팀을 침몰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선발과 관련한 입장 표명 @JTBC 캡쳐

브라질 월드컵을 현장 취재했었기에 그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당시 홍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홍 감독이 쓸데없이 자신의 선발 원칙을 공언하며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선수를 선발할 생각이었다면 그 기준을 밝히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 제가 원칙을 깼습니다라고 했던 홍 감독의 말은 원칙을 깨도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 위함이었겠지만, 그간 원칙주의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홍 감독에게는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겠지만 거짓말쟁이라는 나쁜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결정적 빌미가 됐으니까요.

 

시간이 꽤 흐른 후, 홍 감독에게서 당시 박주영 선발의 진짜 이유를 듣고 나니 축구적 시각에서는 합당하게 여겨졌습니다. 홍 감독은 20143월 그리스 원정 평가전에서 박주영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습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박주영을 불러들이지 않다 그리스전을 통해 정말 마지막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박주영이 그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에 홍 감독은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선수가 경기를 통해 가치를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홍 감독이 쌓아올린 원칙의 장벽은 박주영이 넣었던 그 한 골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와 팬들은 대표팀의 부진을 비난하며 홍 감독의 커리어에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홍명보 울산 감독과 조현우 @풋볼 보헤미안

이번 상황에서 홍 감독을 변호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팬들에게는 의리가 중요하겠지만, 축구 비즈니스에서 이와 같은 스탠스 변화는 흔한 일입니다. 홍 감독이 협회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시즌 중 팀을 비우고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축구판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케이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안 해도 될 공언 때문에 의리 축구프레임에 갇혀 괴로운 시기를 보냈던 아픈 경험을 가진 홍 감독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렸던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확언에 가까운 말을 남기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조심했더라도 비판받을 소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년 전 비판을 받았던 잘못을 반복하며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홍 감독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아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니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단 아직 홍 감독의 입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추후 있을 그의 인터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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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 선임을 발표하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MBC 중계화면

축구 팬들이라면 오늘(7월 8일)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 총괄이사 겸 전력강화위원장 대행의 홍명보 울산 HD FC 감독을 대표팀 새 사령탑에 선임하는 것과 관련한 브리핑에 귀를 기울이셨을 겁니다.

 

사실 이 브리핑이 있기 전 내정 소식을 문자 보도자료로 받았을 때부터 굉장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무려 5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 내린 결론이 결국 홍명보 울산 감독이라니. 홍명보 감독이 자격 없는 인물이라는 게 아닙니다. 국내 감독을 뽑아야 한다면, 홍명보 감독이 가장 첫손가락에 마땅히 꼽혀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이었다면,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어차피 먹을 욕이라면, 차라리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을 경질했던 직후인 2월에 선발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더라고요. 적어도 시간 낭비 없이, 그리고 이렇게 시끄럽게 지난 5개월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이임생 기술이사의 브리핑 들으면서 든 첫 감상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아마 다들 그런 생각하셨을 겁니다. 라 볼피아나, 3, 어태킹 서드 등 그런 번지르르한 축구 용어로 홍 감독의 선임 배경을 포장하는 게 모르는 이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이 사안을 쭉 지켜봤던 이들이 정말 궁금하고 듣고 싶었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 가지가 가장 궁금하더라고요.

 

첫째, 불과 엊그제만 해도 안 하겠다고 대놓고 천명하던 홍명보 감독의 마음을 어떻게 돌렸는가?

 

둘째, 이렇게 홍명보 감독을 선택할 생각이었다면구스 포옛 감독·다비트 바그너 감독 만나러 왜 유럽에 갔나? 그저 요식적 절차로 그들을 만난 셈인가?

 

셋째, 위원장과 네다섯 명의 전력강화위원이 사퇴해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대행으로 키를 잡은 이임생 기술이사가 과연 새 감독을 독자적으로 뽑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선 눈물샘을 자극하는 퍼포먼스와 함께 늦은 밤 문 앞에서 기다려 승낙을 받아냈다는 무슨 연애담 같은 답변이 나왔고, 둘째는 쓸데없는 일정 보고에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이니 다음 팀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훈훈한 마무리 이런 얘기로 넘어가는 게 황당하게 느껴졌으며, 세 번째는 전력강화위원회 소속 아홉 명(정해성 위원장 사퇴 후) 중 네 명이 불참한 다섯 명만 동의 얻은 것에 대해 법무팀과 얘기해 결정 내렸으니 트집을 잡을 생각이면 법무팀에 얘기하라는 식으로 들리더군요.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홍명보 감독 오피셜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새 감독은 반드시 조속히 뽑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몽규 회장이 말한 절차적 정당성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정말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전력강화위원회는 10차까지 가는 회의 끝에 파행으로 흘러갔고 위원장을 포함한 절반의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떠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급하게 감독을 선임하는 건 그 내부 권력 구도에서 이긴 자들이 전리품처럼 선택 권한을 누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데, 과연 이게 정당한 것일까요? 어차피 새 감독 뽑는 게 난항을 거듭할 거라면 전력강화위원회를 새로 구성해서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정몽규 회장이 이임생 기술이사에게 당신이 테크니컬 디렉터이니 지금부터 모든 걸 결정을 다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후일담을 소개하던데, 이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이임생 기술이사는 한술 더 떠서 정몽규 회장한테 보고도 안하고 김정배 부회장한테만 얘기하고 자신이 알아서 홍명보 감독 선임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이것도 참.

 

일단 전력강화위원회의 수장이 테크니컬 디렉터이니 모든 걸 책임지고 결정해나가라고 한 게 왜 지금에서야 발동되는지도 참 웃깁니다. 정해성 위원장, 그 전에 마이클 뮐러 위원장은 뭐가 되는 걸까요? 원하든 원치 않든 허수아비가 된 그들의 처지가 참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이 두 전임 전력강화위원장들에겐 후보 추천과 면접 권한만 있었을 뿐 협상 권한이 없었습니다. 정몽규 회장이 새 집행부를 꾸리면서 만든 대표팀 운영 규정 때문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많은 후보자들이 거론되고도 협상이 불발되는 일이 반복되었죠. 그래서 애당초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국내 지도자들이 여러 이유 때문에 우선 순위가 아니었냐는 뒷말이 나왔던 것이고요. 지금처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고 그들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결정권한을 줬다면 이렇게 다섯 달 동안 우리 축구계가 시끄러웠을까요?

 

그리고 이임생 기술이사는 뭔가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내가 내린 결론이니 정몽규 회장은 몰랐다는 식으로 보호하려는 게 너무 보이네요. 본래 직책상 전결 권한이 있든, 없는 권한을 수장에게 위임을 받든 그 책임소재는 결국 그 조직의 장에게 있는 겁니다. 게다가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운영규정상 최종 승인 권한은 결국 협회 회장에 있는 게 아니었나요? 전력강화위원회는 현재 규정상 그냥 감독 후보를 추천하는 자문기구에 불과하니까요. 그렇다면 본인의 뜻대로 진행한 이임생 기술이사는 월권한 게 아닙니까?

 

이 글을 쓰는 사이에,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엄청난 폭로를 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실상 전력강화위원들의 생각이 배제되거나 일부 협회 고위층과 뜻을 함께 하는 전력강화위원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는 뜻입니다. 파가 갈렸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었고, 이런 전력강화위원회였다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차라리 해산하고 새로운 멤버로 꾸리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홍명보 감독이든 누구든, 다음 대표팀 감독은 환영받고 응원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리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과 분위기만 놓고 보면 완전히 글렀네요. 감독 새로 뽑으면 다 정리될 줄 알았는데 더 큰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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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풋볼 보헤미안

“(감독으로) 누구를 뽑든 여론은 45대55로 갈릴 것이다. 누가 하든지 55일 가능성이 높다. 50% 이상 지지를 받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5일 천안축구센터에서 열렸던 2024 대한축구협회 한마음 축구대회에 참석해 남긴 말입니다. 한마음 축구대회가 제가 듣기론 대한축구협회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축구대회였다는데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 대회가 한동안 거의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는데, 뭐가 어쨌든 공 하나를 두고 땀을 흘리며 팀워크를 다지는 축구 본연의 재미와 의미를 통해 그간 적대적인 미디어를 어루만지는 게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시기가 시기다 보니 오죽하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서도.

 

어쨌든 정몽규 회장의 말을 계속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표팀 사령탑은 한 팀을 만드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전술적인 부분들은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전력강화위원회에도 '누가 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뭔지 먼저 정한 후 절차적 정당성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우리가 필요한 것이 뭔지 정의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저는 이 말을 접하면서 갑갑함이 밀려오더라고요. 시중에서 말하는 유체이탈화법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굉장히 옳은 얘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먼저 정한 후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 알맞은 감독을 영입해야죠.. 문제는 이 프로세스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이후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겠죠.

 

이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카타르 월드컵 기간 만났던 정 회장과 가벼운 티타임에서, 더 가볍게 새 감독 찾느냐라고 농담 한 번 한 게 감독 선임으로 이어졌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클린스만 감독 체제가 처참하게 무너진 후, 다섯 달 동안 새 감독을 뽑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절차적 정당성을 기존의 협회 내 질서 내에서 다시 곧추세우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옳은 얘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에 정당성에 실립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는, 나름의 문제점 분석은 더 갑갑하게 만듭니다. 기억을 되짚어봅시다. 홍명보-김판곤 감독 체제에서 한국 축구가 시도했던 건 이른바 능동적 축구(proactive football)’였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소위 강호라 불리는 팀과 대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축구를 하자는 대전제를 깔았습니다. 그 대전제 하에서 여러 지도자가 거론되었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최종 낙점되었습니다. 그리고 벤투 감독 재임 기간 내내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서 정말 그런 축구를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꽤 시끄러웠죠. 저도 그때 솔직히 이 능동적 축구의 성공 가능성이 꽤나 부정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생전 볼 수 없었던 그림이었기에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앞섰거든요.

파울루 벤투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풋볼 보헤미안

그런데 이 논쟁 여부를 차치하고, 벤투 감독 선임 과정만 놓고 보면 정 회장의 말처럼 굉장히 깔끔했습니다.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먼저 정하고, 그에 걸맞은 게임 플랜을 가진 감독을 데려왔으니까요. 결과까지 따랐으니 지금도 홍명보-김판곤-벤투 체제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서 호평을 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과연 대한축구협회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나요?

 

벤투 감독 체제에서 악착같이 고수했던 능동적 축구를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경기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축구(reactive football)를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며, 축구는 결국 결과론이기에 성과가 따라온다면 이 축구 철학 역시 능동적 축구만큼 찬사 받을 수 있겠죠.

 

제가 따지고 싶은 건 벤투 감독 부임 후 새 사령탑을 뽑을 때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그 방향성을 정했는지 여부입니다. 그리고 과연 정몽규 회장의 탑다운 오더 방식이 그 방향성을 정하는 정당한 수단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정 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부산 아이파크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팬들의 반발은 둘째치고, 어쨌든 가장 큰 권한을 지닌 구단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 자기 구단을 죽이든 살리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혹자는 언젠가 제게 정몽규 회장을 두고 협회를 부산 아이파크 운영하듯이 한다라고 비판하던데, 그게 빈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더 갑갑한 건 지난 620일 대한축구협회가 2024 KFA 한국축구 기술철학 발표를 통해 향후 어떠한 축구를 할 것인지 방향성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무려 304.2mb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인데, 정작 정몽규 회장은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합니다. 파일 용량을 보니 협회 기술국 실무자들 꽤나 고생했을 듯한데 한 방에 힘 빠지게 만드는 발언이네요. 분명히 회장에게 보고가 되었을 텐데, 앞으로 이런 축구를 하겠다는 방향성을 확립한 이 사안에 대해 회장이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0일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기술철학 발표 대 언론 브리핑 자료

이런 걸 보면 전력강화위원회도 파행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담당 파트에 전문가가 백날 치열하게 토론해서 안을 만들어 가면 뭐하나요? 해당 파트 비전문가인 회장은 사안에 대해 인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은 이미 내면에서 결심을 내리고 바라는 안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실무 책임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언급하기 전에,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절차가 있는지부터 의심이 듭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8강에서 이란에 밀려 탈락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던 일본이 대회 내내 난맥을 드러내다 비슷한 체급의 팀을 만나자 탈락했으니 일본 축구계가 받았을 충격이 꽤나 컸을 겁니다. 그때 타지마 코조 일본축구협회 회장은 곧장 믹스트존에서 기자들을 만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내비치며 계속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일본 내 부정적 여론은 정말 하루 이틀 만에 금세 사라졌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마담 팡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태국 축구의 대모로서 한국 팬들에게도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린 누안람 란삼 태국축구협회 회장도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최종예선행 실패가 확정됐을 때 대국민 사과를 하며 선수단을 보호했습니다. 홈 한국전에서 0-3으로 패배했을 때도 고개를 숙였죠. 중국에 승자승 원칙에 밀려 최종예선행에 실패했던 태국 내에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단, 그 선수단을 위해 앞에 나와 수습하려 했던 회장에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리더십이라는 건 이런 겁니다.

 

모두가 알듯이 클린스만 감독이 떠난 후 5개월 동안 한국 축구 대표팀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우리 회장님, 그간 잘 안 보이시다가 오늘은 얼굴을 내놓고 본인 생각을 얘기하신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접하니 또 갑갑해집니다. 어쨌든 시간은 갑니다.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아직은 정몽규 회장의 시간입니다. 인내의 시간, 정몽규 회장이 이길까요? 여러분이 이길까요? 어질어질합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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