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보헤미안입니다.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드디어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지난 2024년 7월 8일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을 제75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음을 알린 후, 3주가 흐른 시점에서야 대표팀 새 출범을 알리는 취임 기자회견을 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홍 감독이 공식적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에 대한 소견을 어떻게 밝힐 것인지에 대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국정감사까지 거론될 정도로 가뜩이나 분위기가 최악인 터라 반전을 시킬 만한 동력이 이번 인터뷰에서 나올지 애당초 의문이었고, 막상 기자회견이 끝나니 실제로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그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특히 주목받았던 멘트를 정리하고 제 생각을 남깁니다. 가장 납득이 안 되는 그의 말은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울산과 K리그 팬들에게 죄송하지만, 대표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홍명보입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5개월 동안 여러 논란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K리그 팬들과 약속을 저버려 미안함과 무거운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동안 큰 성원을 보내주신 울산 HD 팬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려고 합니다. 저는 울산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뜨거운 지지 덕에 다시 감독으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택이 팬 여러분에게 실망감을 드렸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울산, K리그 팬들께 깊은 용서를 구하며 어떤 질책과 비난이든 받아들이고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실망하신 팬들에게 용서 받는 방법은 제가 제 자리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습니다.”
홍 감독은 자신의 취임사 첫 머리에 K리그 팬과 울산 팬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내용을 채웠습니다. 하지 않겠다고 공석에서 대놓고 선언했으나 이를 손바닥 뒤집듯 번복해버린 것에 대한 대응이었는데요. 풋볼 보헤미안은 홍 감독이 요즘 사회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사과를 한 것 같습니다. 그냥 어떤 질책이든 비난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요?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 그러니까 대표팀 성적으로 용서를 받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K리그와 대표팀은 한국 축구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에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맞습니다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저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K리그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한 참입니다. 하지만 대표팀이 성적을 내면 그 분위기가 K리그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그래서 그게 K리그가 대표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되는 건 아닙니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K리그와 홍 감독을 빼앗긴 울산 팬들 중 대다수는 대표팀이 무슨 성적을 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시끄러웠던 지난 과정을 떠올려볼 때, 심지어 말 뒤집기와 거짓말 논란이 있었던 홍 감독의 상황에 더 주목해서 전망하자면, 많은 K리그 팬들이 설령 대표팀이 좋은 성과를 낸다고 치더라도 그건 대표팀의 성공이자 홍명보 감독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K리그와 울산의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외려 모두의 박수와 격려를 받아야 할 대표팀을 적대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대표팀을 응원해달라? 팬들의 굉장한 거부감을 사는 발언이 아닐까요?
지금 상황은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홍명보 감독이 언제든 한 번은 더 대표팀을 맡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대표팀은 의리 축구 논란으로 경기 외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고 본선으로 향했고, 풋볼 보헤미안도 정말 많은 비판 기사를 쏟아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를 어느 정도 이해를 했습니다.
그때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준비 기간이 1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월드컵 본선이라는 거대한 과업을 해낸다? 홍명보 감독 처지에서는 자신이 잘 아는 선수로 승부를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전 당시 홍 감독의 선택이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설령 따가운 질타가 있어도, 외부의 비판을 통해 내부를 단결한다는 식의 발상이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당시 대표팀 분위기가 그랬고요. 하지만 외부 비판을 똘똘 뭉쳐 버텨내는 팀은 제 기억에는 거의 없습니다. 실력과 결과로 말한다? 어찌 보면 이상일 뿐, 사실 도박에 가까운 노림수입니다.
그래서 만약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또 잡게 된다면, 반드시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뒤따르길 바랐습니다. 첫째, 넉넉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무엇보다 박수 받는 가운데에서 대표팀이 출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명보호 1기가 이 두 가지가 없어서 망가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때 지도자 홍명보는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시작부터 글렀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 것이고, 더는 이런 기회가 없을테니까요.
물론 앞날은 모릅니다. 홍명보 감독이 주변의 우려와 질타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한국 축구의 성공이자, K리그와 울산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대표팀의 성공은 홍명보의 만회이자 성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뿐일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감독 선임은 안 된다고 많은 이들이 얘기했던 겁니다.
또 한 가지, 앞으로 모든 경기가 홍 감독을 물어뜯는 소재가 될 것입니다. 좋은 경기력을 통해 이긴다? 선수들이 잘해서 혹은 운이 좋거나 상대가 약해서라는 말이 따라붙겠죠.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기거나 진다? 그러면 모든 화살은 그러니까 홍명보를 뽑은 탓이라고 귀결될 겁니다. 어떤 상황이든 속된 말로 까이게 되는 팀을 맡는다? 그게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맡아선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한국 축구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걸었습니다. 한국 축구를 위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아무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어쨌든 홍명보 감독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꼭 승리하고 성공하십시오. 팬들의 비판이 잠들지는 모르겠지만, 꼭 성공해야 그 수위를 조금은 낮출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이 비난과 비판이 정말 따가울 겁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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