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있었던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이강인의 싱가포르전 이후 믹스트존 인터뷰 거절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강인은 지난 6일 밤 9시(한국 시각)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졌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그룹 5라운드 싱가포르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7-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과 더불어 멀티골을 성공시킨 선수였기에, 이름값 여부를 떠나서라도 최고 공헌 선수인 만큼 취재진 입장에서는 반드시 인터뷰가 필요했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기사가 나왔듯이 이강인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풋볼 보헤미안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요. 단순히 이강인이 인터뷰를 거절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 한 문장만 보면 단순히 또 ‘기레기, 또 그러네’ 이런 식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때 현장 상황을 아신다면,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조금 갑갑한 감이 있습니다.
상황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릴게요. 선수 호칭은 빼겠습니다. 경기가 현지 시각으로 10시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은 거의 자정 조금 못 안 되는 시간에 스타디움을 떠났습니다. 본래 계획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는데요. 그래서 당초 취재진은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관계자들과 경기 후 인터뷰 풀 계획(소스 공유)을 짜고 최대한 간결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최대한 선수들이 경기장을 빨리 떠나게끔 배려하고자 한 것입니다. 어찌 됐든 대표팀이 대회에 나가면 취재진도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끝나니 팀이 스타디움을 조금 늦게 떠나게 됐습니다. 공항에서 정처없이 대기하다 일반인들과 섞여 더 피곤한 상황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경기 후 라커룸에서 씻고 대기하는 게 더 낫겠다고 협회 측 관계자들이 판단한 것인데요. 시간적 여지가 생긴 덕에 취재진들은 경기 후에 제법 많은 인물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상 취재진 모두 들어가기 힘들 법한 경기 후 기자회견에 들어갈 수 있었던 덕에 김도훈 임시 감독과 손흥민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고요. 믹스트존에서는 주민규·황재원·황인범·오세훈 그리고 이날 데뷔골을 터뜨린 배준호도 A매치 데뷔골 매치볼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훈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싱가포르축구협회(FAS)에서도 한국 출신 귀화 국가대표 송의영의 인터뷰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이 스타디움을 떠나기 전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는 곳인 믹스트존은 본래 그런 공간입니다.
하지만 단 한 선수 이강인만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요. 경기 후 기자회견 이후 팀을 떠날 때까지 약 한 시간 가량 취재진의 믹스트존 인터뷰 요청, 이 요청을 받아들인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담당자의 설득, 이강인의 거절이 오가는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기꺼이 믹스트존에 나타나 경기를 리뷰하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지만, 이강인은 마다한 것이죠.
그러다 뭔가 ‘꿩 대신 닭’처럼 손흥민이 믹스트존에 나타났습니다. 통상적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선수들은 이미 많은 코멘트를 한 만큼 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취재진도 어지간해서는 기자회견에 나선 선수를 잡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말을 들었으니까요.
참고로 이날 손흥민은 경기 직후 피치에서 방송용 플래시 인터뷰까지 했으니 이날만 세 번이나 인터뷰에 응한 셈인데요. 옥신각신하는 상황을 선수 대표로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인터뷰에도 웃으며 또 나타나는 모습에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단순히 일 차원을 넘어… 뭐라고 할까요. 인간적인 마음 씀씀이가 보여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강인은 팀 버스가 창이국제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믹스트존에 등장했습니다. 경기 소감이라도 듣고 싶었던 몇몇 기자들이 한 마디 해달라는 말을 간곡히 던졌지만 미소와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냥 버스에 올랐습니다.
저는 기자 생활을 십수 년째 하면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봤습니다. 믹스트존 인터뷰가 의무 사항이냐 아니냐 이걸 떠나(본래 의무이지만 사문화된 규정이라고 봅니다. 이걸 가지고 선수에게 페널티를 물게 하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인터뷰에 기꺼이 응하며 자신의 가치를 어필합니다. 혹은 대중들이 가질 법한 오해를 풀려고도 노력합니다.
지금은 직접 소셜 미디어로 소통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팬들과의 소통 창구가 바로 이런 미디어와 인터뷰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선수-기자 신분이지만, 사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 인간적인 교감도 많이 나눕니다. 선수든 기자든 결국 감정 가진 사람이기에 이런 소통이 있어야 그릇된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강인이 믹스트존을 그냥 떠나버리는 모습을 두 번 직접 봤습니다. 작년 6월 엘살바도르전, 그리고 엊그제 싱가포르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믹스트존을 통해서 걸어 나간 게 어디냐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의 모 선수는 아예 믹스트존을 거치지 않고 다른 창구로 경기장을 떠나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 선수는 커리어 내내 미디어와 전쟁을 치러야 했고,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선수가 믹스트존 인터뷰를 피하려는 것, 그로 인해 오해가 생긴 미디어가 공격하는 것 이런 악순환의 굴레를 떠나 그냥 서로 만나 터놓고 소통하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차라리 믹스트존에서 기자들을 만나 논쟁하고 마음에 안 들면 ‘기자 갈구는’ 선수가 더 좋습니다.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 서로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있고 오해를 하지 않으니까요. 시쳇말로 그냥 하고 말면 모두가 편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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