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 @풋볼 보헤미안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2024년 6월 11일 저녁 7시(현지 시각)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입니다. 이 경기장은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며, 전 세계에서는 아홉 번째, 동남아에서는 가장 큰 경기장입니다. 총 수용 관중이 8만 7,000여 명에 달합니다. 이곳은 2007 AFC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기도 하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당시 한국이 이곳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에서 패한 곳입니다. 여러모로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매머드 스타디움이자, 아시아 축구계에서도 손꼽히는 주요 스타디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에서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6일 밤 10시(한국 시각)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D그룹 6라운드 대만과 대결을 가집니다. 말레이시아는 이번 대만전에서 최대한 많은 득점(정확히는 최소 7골)을 성공시키고, 같은 시각 무스카트에서 벌어지게 될 경기에서 키르키스스탄이 오만에 지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최종 예선에 진출합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이곳에 킥 오프 서너 시간 전에 도착해 주변을 한번 둘러봤는데요. 동남아하면 축구 인기가 최고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킥오프 한 시간 전에 미디어 트리뷴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조금 실망인데요. 과연 서울이면, 방콕이면, 싱가포르이면, 중국이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킷 잘릴 국립경기장 정문 @풋볼 보헤미안

킥오프 한 시간 전인데도 입장한 관중이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말레이시아축구협회(FAM)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1만 2,000여 명의 관중이 예매를 했다고 하는데요. 워낙 통이 큰 경기장에 1만 2,000여 명이 들어와봤자 기별이 갈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전체적으로 경기장 주변에 우리가 생각하는 축제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게 안타깝습니다.
 
사실 경기 하루 전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상대로 우리가 가진 환경적 요인을 앞세워 도박을 걸어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인즉슨, 말레이시아 특유의 더위와 광적 열기로 유명한 울트라스 말라야(한국의 붉은 악마와 같은 대표팀 서포터스)의 응원을 앞세워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겠다는 것인데요. 경기가 시작되어야 알 수 있겠으나, 날씨는 비까지 내려 선선한데다 관중도 생각보다 적어 과연 그 뜻이 실현될지 의문입니다.
 
사실 기자회견 후 말레이시아의 최대 스포츠 채널 아스트로 아레나 TV의 한 남성 기자와 만난 적이 있는데요. 이 기자가 말하길 “내일 경기에 관중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이다. 1만 2,000여 명이라는데 한 7,000명 예상한다”라더군요.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평일 저녁 경기에 교통 체증 때문에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 그렇구만”
 
그리 답하긴 했습니다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한국과 중국의 경기도 평일 저녁 경기이고, 한 번 경기하면 서울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길이 꽉 막히는 건 매한가지니까요. 그래서 서울에서 있을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 6만 관중 매진 소식을 전하니 놀라더군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확정 직후 김판곤 감독 @말레이시아 뉴 스트레이츠 타임즈

사실 김판곤 감독은 지난해 1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풋볼 보헤미안이 만났을 때 관중 수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김 감독이 말레이시아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관중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쿠알라룸푸르 원정을 왔을 때, 울트라스 말라야의 광적 응원에 홀딱 반했다네요. 그 응원을 받으며 팀을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울트라스 말라야는 김 감독 부임 후에도 변함없이 엄청난 응원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전 때 제법 큰 규모의 원정 응원단이 경기장 분위기를 휘어잡았었습니다.

그때 말레이시아의 골이 터지자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를 중고로 판매하고 카타르행 티켓값을 마련해 그 자리에 온 한 남성팬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클로즈업이 되기도 했죠(이 남자의 사연이 알려져 당시 한국전 득점자였던 파이살 할림이 사비를 털어 새 오토바이를 사줬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취재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말레이시아가 대회를 떠나기 전까지 도하의 중심지 수크 와키프는 말레이시아 팬들의 응원 때문에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워낙 유명하다기에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을 보고 싶어 경기장을 찾은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 감독은 바로 그런 서포터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는데요. 문제는 울트라스 말라야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대만, 키르키스스탄, 오만이라 관심도가 덜한 것도 약간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팀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건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한참 글을 쓰다 보니 킥 오프 40분 전이네요. 지금도 이렇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팀의 성적? 말레이시아축구협회의 프로모션 능력 부족? 그냥 팬들의 무관심? 어찌 됐든 최종예선에 가냐마냐 하는 상황인데 분위기가 너무 차가운 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기적이 일어나 말레이시아가 최종예선을 가는 그림이 연출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까요? 이곳에서 지켜보겠습니다.
 

국가 연주 리허설 @풋볼 보헤미안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