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신임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협회는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새 전력강화위원장에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맡는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한준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해설가, 정재권 한양대 축구부 감독, 유종희 전북축구협회 전무, 박철 K리그 경기 감독관, 백종석 FC 서울 스카우트, 황인선 전 여자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최 위원장을 도울 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최영일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은 현역 시절 1994 FIFA 미국 월드컵과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에서 구각대표로 활약했으며, 지도자로서는 동아대 축구부를 맡았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때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단장을 맡았습니다. 현역 시절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에이스 미우라 카즈요시를 전담 마크한 수비수로 유명합니다.
이번 전력강화위원회는 최근 출범한 홍명보 감독 체제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원하고, 공석인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및 남자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또한 협회는 이번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의 활동 기간은 내년 1월까지 현 정몽규 회장 집행부 체제의 임기 종료일까지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정몽규 회장이 4선에 실패할 경우 이 전력강화위원회는 해체됩니다. 이제 9월이니 약 네다섯 달 동안 정도 활동하는 짧은 기간만 활동하는 전력강화위원회라 할 수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번 최종예선 B그룹에서 이라크·요르단 · 오만 ·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맞붙게 되었는데요. 9월에 두 경기를 치르는데요.
12일,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9월에 예정된 북중미 월드컵 최종예선 첫 두 경기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첫 경기는 9월 5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팔레스타인과 대결하고, 10일 밤 11시(한국 시간)에는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스타디움에서 오만 원정 경기를 치릅니다.
우리나라로선 조 편성 운이 괜찮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A그룹에는 중동 맹주 이란과 AFC 아시안컵 2연패팀 카타르가 자리하고 있고, C그룹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세 팀이 뒤섞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우리에게 굴욕을 안겨준 요르단을 비롯한 B그룹 상대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춰 방심은 금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원정 일정입니다. 상대 5개국으로 향하는 직항편이 없어서 모두 UAE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경유해야 하는 상당히 고된 여정이죠. 게다가 중동의 치안 문제와 정세 불안정이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라크 바스라 국립경기장 ⓒUAE 매체 7NEWS바스라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이라크-인도네시아전 ⓒAFC
특히 이라크 원정길이 큰 걱정거리입니다. 이라크는 현재 한국 정부로부터 여행 금지국가로 지정된 곳입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이라크를 위험한 국가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라크는 지난 20~30년 동안 월드컵이나 올림픽 예선을 제3국에서 치러야만 했습니다.
다만 최근 이라크 정세가 안정되고 있다는 이유로 최근 FIFA와 AFC에서 이라크 내 홈 경기를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라크 남부 도시 바스라 국립경기장에서 2차 예선 경기가 열렸던 적도 있고요.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가 2차 예선에서 이라크 원정 경기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2025년 6월 5일 예정된 이라크 원정 경기도 이곳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성사된다면 1990년 2월 15일 바그다드에서 경기가 있었던 이후로 35년 만에 이라크 원정을 하게 되는 거죠. 선수단이야 외교적 조치로 이라크에 들어갈 수 있다지만, 우리 팬들이 응원을 위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여행 금지 국가라 방문이 불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군의 최루 가스가 떨어진 팔레스타인의 파이살 알 후세이니 국립경기장 ⓒ팔레스타인축구협회(PFA)
한편으로 다행인 건, 이스라엘과 사실상 전쟁 상태에 있는 팔레스타인 원정은 안 가도 된다는 겁니다.
팔레스타인은 사상 처음인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을 안방에서 치르고 싶어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홈 구장인 파이살 알 후세이니 국립경기장은 예루살렘 인근 서안지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르단 등에서 팔레스타인의 홈 경기 개최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이집트 매체 <알 마스리 알 윰>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홈 경기 요청이 AFC와 FIFA에서 거절되었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축구협회 대변인 디마 사이드가 이 소식을 팔레스타인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우리 팬들 앞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당연한 권리"라며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경기장 주변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2023년 4월에도 이스라엘군이 파이살 알 후세이니 국립경기장에 최루 가스를 발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홈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은 팔레스타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선수단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번 AFC와 FIFA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타인도 이라크, 시리아, 예멘처럼 제3국에서 홈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경기 장소가 여전히 중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변함없을 듯합니다. 안전은 확보되었지만 고된 원정길이라는 건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최근 국회 문체부 감사를 앞두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2일 오후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큰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이와 같은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이례적으로 두 편의 글로 나눠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링크가 안 되는데,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www.kfa.or.kr) 대문에 떡 하니 걸려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미 많은 매체가 보도해서 축구팬들이라면 이미 내용을 잘 알고 있으실 듯한데요.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특혜 채용 시비 등에 대해 “아무튼 홍명보 감독 선임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겁니다.
이에 통신사 뉴시스가 대한축구협회의 이 성명문에 대한 반박 기사를 올렸습니다. 조롱 메일을 보낸 귀하신 분이 화가 났다는 그 기사입니다.
이 기사의 요지는 협회가 홈페이지에서 장문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을 설명했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 기사였습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의 모 인사는 두 통의 이메일을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보냈다는데요. 내용은 없이 첫 번째 이메일에는 ‘문해력?’이라는 제목만, 두 번째 이메일에도 역시 내용은 없이 ‘축구협회 설명문을 제대로 정독?’이라는 제목만 붙여 기자에게 항의했습니다.
정당한 반론 보도 청구 절차도 없이, 생뚱맞게 기자에게 메일로 다분히 감정풀이식 조롱으로 분노를 표출한 셈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걸 개인 메일도 아니고 협회 공식 메일로 보냈다는 게 그저 황당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이 이메일을 보낸 이는 일개 직원이 아니라 고위 임원입니다. 결국 이 황당한 해프닝에 대한축구협회 측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쯤되면 이 사건을 아예 몰랐을, 그리고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홍보팀 직원이 불쌍할 지경입니다.
뉴시스가 공개한 대한축구협회 고위 임원의 제목만 달랑 붙은 일침 메일 @뉴시스
사실 이번 대한축구협회가 부랴부랴 발표한 두 개의 성명문은 여러모로 이상한 감이 많았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찌됐든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 감독 선임과 관련해 브리핑을 한 바 있습니다. 공식적 채널을 통해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추가적으로, 심지어 나름 더 자세한 내막을 알리려는 자세를 취한 건 예고된 국회 문체부의 감사 예고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미리 밑밥을 깔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한데요. 저 역시 그 고위 임원의 말처럼 문해력이 모자라선지, 아무리 읽어봐도 이 성명문에는 반박할 건덕지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리고 국회 감사에서도 결국 이 성명문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비판하는 국회의원들 앞에서도 문해력이 모자라다는 간 큰 일침을 할 수 있을지 실로 궁금하네요.
저는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몇 년 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그건 이렇습니다 라는 성명문 코너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사실이 있는데도 반박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공식 채널로 반응하면 좋은 일이죠. 문제는 이 공식 채널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 성명문 코너는 과거 모 기자가 집요하게 협회 행정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자 적극 대응한다면서 만든 것인데요. 그때도 사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당 기자가 비판 기사만 내놓으면 재빨리 대응하는 게 무슨 커뮤니티 댓글 싸움 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한동안 잠잠하다 최근 협회를 향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 코너가 갑자기 또 바빠지는 듯한 모습인데, 이렇게 글로서 대응할 것이면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반박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게 참 갑갑합니다. 반박의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을 지켜야 할 때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도 대외 대응 능력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요즘 세상은 기록이 지배합니다. 협회의 그 두 개의 성명문도 결국은 도마에 오를 것이며, 이번 ‘귀하신 분’의 문해력 일침 메일도 도마에 오를 것입니다.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데, 왜 자꾸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25일 출판사 가람기획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자서전 ‘축구의 시대-정몽규’가 26일부터 발간된다고 밝혔습니다. 가람기획 측은 ‘축구의 시대’가 현재 축구계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크게 비판받고 있는 정몽규 회장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는 것에 대한 최초의 ‘오피셜 코멘트’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책에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에 대한 해명보다는 자신이 걸어왔고 내려왔던 길과 선택에 대한 회고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뤄져 있으며 1부에는 K리그 총재 시절, 2부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시절, 3부는 정몽규의 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1년 동안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자질 논란이 점점 커질 때 책을 구성하고 만들어왔다는 뜻인데요. 지난 3월 승부조작 사면 논란부터 약 1년 간 이어져 온 심각한 협회의 난맥상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비쳤을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그의 사촌 형이자 전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정몽준 회장 역시 자신이 경험한 정재계와 축구계에 대한 얘기를 자서전으로 다룬 바 있습니다.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이라는 책이었는데요.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서 내려와 FIFA에서도 내부 권력 투쟁에서 밀려 실질적 권한이 없는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던 2011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시간이 흘러 낮은 곳으로 내려와 전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역전을 돌아봤던 정몽준 회장의 자서전과 달리, 정몽규 회장의 자서전은 지금 한창 뜨거운 논란이 불거진 시점에 나온다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을 듯합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이번 감독 선임 과정과 관련해 뒷말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 이례적으로 타임라인까지 공개하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는데요. 대한축구협회가 공개한 내용 중 가장 시선을 모으는 대목은 미국 국적의 A감독, 즉 제시 마시 현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여러 후보들과 면담 및 협상을 통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라며 “미국 국적의 A감독과 협상은 국내 거주 요건과 세금 문제로 결렬되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단 마시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의 기준에 상당히 부합하는 지도자였다는 건 인정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전술적 플랜과 지도 스타일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순위 협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협회는 해당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협상을 진행했다”라고 협상 배경을 묘사했습니다.
이어 “협상 초기에는 마시 감독 에이전트 측에서 연봉 규모와 국내 거주 요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라며, “그러나 이후 세금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질의와 협상이 진행되었고, 결국 지연되었다. 협회 측 요청 시한이 지나 협상이 결렬되었고, 최종적으로 A감독 측은 국내 거주 문제와 세금 문제로 인해 감독직 제안을 포기한다고 회신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마시 감독에게 협상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이 표현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마시 감독과 손을 잡을 생각이 있었으면, 감독과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안을 둘러싼 이견 차 때문에 협상이 계속 지연되다 결국 감독이 포기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건, 반대로 뒤집으면 협회의 허들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대한축구협회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외국인 감독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의 축구철학과 전술적 선택을 평가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들의 철학이 협회의 기술철학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홍명보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대표팀 운영 방안과 한국축구 기술철학 연계에 대해 논의한 후, 홍 감독을 최종 선임했다”라고 홍 감독 선임 배경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어찌 됐든 일은 벌어졌고 현실적 측면에서도 사령탑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해명도 그리 매끄럽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명 자체가 지금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또 마시 감독이 도마에 오르고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무적 감각이 전혀 없네요.
2007년 8월, 대한축구협회는 박성화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습니다. 참고로 박성화 감독은 부산 사령탑에 부임한 지 고작 15일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K리그 감독 빼오기는 눈치나 타이밍 같은 것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산 아이파크·전북 현대·울산 HD 등 졸지에 감독을 빼앗긴 팀의 팬들이 분노하며 슬퍼했다는 점, 당시에도 이런 사태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미디어의 비판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고개를 슬쩍 숙이며 “미안하다.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주어서 감사하다”라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 한 마디로 퉁치고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일어날 때마다 축구계가 뒤집어졌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의 이 막무가내 행동은 왜 되풀이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과거 기사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에 이 악법을 버젓이 적어두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제12조 감독 및 코치 등의 선임에 적혀 있습니다. 특히 제2항에 주목하세요.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 중 문제의 조항 @대한축구협회
이번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행을 두고 이 조항에 대한 팬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습니다. 몇몇 매체는 이 규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축구협회가 스스로 이 규정을 없앨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대한축구협회 처지에서는 감독을 뽑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 그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줄 ‘치트키’ 아니겠습니까? 무적의 규정인데, 아무렴 스스로 포기할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풋볼 보헤미안은 이 규정 때문에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이들이 뭉쳐, 반드시 이 악법을 삭제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규정 삭제가 안된다면, 적어도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데려갈 때 구단과 합당한 이적료 혹은 보상금 협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조항 정도라도 추가해야 합니다.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할 주체, 바로 K리그 구단들과 그 K리그 구단의 이익 대변 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입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K리그에 끼치는 악영향이 정말 심대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반드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야 합니다.
울산 HD FC 홈 문수월드컵경기장 @풋볼 보헤미안
물론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계 전체를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에 반기를 드는 구도이기에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대한축구협회와 싸움 붙이지마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일어나는 이런 일 때문에 구성원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저 대한축구협회의 산하단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손 놓을 수는 없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K리그 구단과 그들의 이익 대변 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대한축구협회와 관계보다 그들의 이익과 팬들의 요구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한국 축구를 위한 대의를 위해 아무튼 협조해야 한다? 아닙니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적어도 감독 빼오기 같은 사안은 수평적 관계에서 협의를 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우리네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나치게 순종적입니다. 협회의 조치에 반대 성명을 내놓는 유럽 클럽 혹은 리그 사무국의 사례가 상당히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힘듭니다. 최근 십수 년 사이에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리딩 클럽들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몇몇 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뉴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축구판에 야당이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심지어 거수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건강한 토론이 없고, 토론을 주장하면 ‘삐딱이’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그러니 이런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이 규정에 대해서도 반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 뺨 때리는 것 같아 자제하고 싶었지만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울산에 고언을 드릴 것도 있습니다. 김광국 울산 HD FC는 “홍명보 감독을 우리가 보내주는 것”이라며 마음 아픈 팬들을 달랬지만, 팬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아무리 포장한다고 한들, 팬들은 멀쩡한 감독을 강탈당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사실 팬들을 달랠 게 아니라 협회에 목소리 높여 반발해야 하는 게 정상적 상황입니다.
물론 팬들도 그 이상한 규정 때문에 울산 구단이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잘 압니다. 팬들도 울산 구단이 엄연히 피해자라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울산 구단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을 겁니다. 풋볼 보헤미안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불합리한 상황과 부당한 조건을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추후 울산과 같은 피해를 보는 다른 K리그 구단이 나올 수 있고, 먼 훗날 울산이 똑같은 사례에 또 당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 규정을 뿌리 뽑아야 할 이유입니다.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조공을 바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본인들을 부정하고 팬들의 바람을 외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교훈입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교훈입니다.
박주호의 전력강화위원회 운영 실태에 대한 고백이 엄청난 여파를 낳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멤버였던 박주호는 지난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공식 발표에 깜짝 놀라며 그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전력강화위원회의 난맥상에 대해 가감 없이 공개해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대한축구협회는 9일 오후 박주호의 주장에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놀랍게도 국가대표로서 A매치 40경기에 출전하며 헌신했던 레전드 선수에게 법적 조치까지 강구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아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처지에서는 나름 정말 어렵게 모셔온 새 감독에 대한 정당성을 흔드는 발언이었을테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곰곰 생각해봅시다. 박주호는 이번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소위 ‘이권’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대부분 현역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거나, 기술 파트에서 소위 한국 축구계 중심에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지난 2023년 6월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지 고작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박주호 처지에서는 이 활동을 통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 멤버 중 누군가가 “지도자를 안 해봐서 그렇다”라고 그렇다는데, 맞습니다. 그는 아직 관련 파트에서 경험이 없고 그 경험을 쌓으려면 사전에 여러 자격부터 먼저 갖춰야 할 처지입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박주호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서 이번 전력강화위원회 활동을 통해 얻을 게 조금도 없습니다.
반대로 이른바 ‘폭로’라는 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손해겠죠. 지금껏 다른 축구인 선배들이 그러했듯 침묵하고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겁니다. 축구판, 정말 손바닥만합니다. 소위 라인이라는 게 중요하고, 그 라인을 얼마나 잘 타느냐가 현역 이후의 축구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내부 폭로자 포지션에 선다? 지금처럼 그를 ‘열사’로 여기는 팬들의 지지가 흐릿해지면, 남는 건 배신자를 바라보는 눈초리로 바라볼 일부 축구계 선배들의 삐딱한 평가뿐입니다.
대한축구협회
반대로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성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비밀 유지 서약 위반을 근거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대한축구협회가 정말 박주호를 법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팝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자신의 저택이 담긴 풍경 사진을 두고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가 도리어 그 사진이 더욱 외부에 유포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데요. 우리말로 치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 괜히 벌집을 건드려 일을 키우는 어리석은 행동 쯤으로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지금 딱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실 공방으로 흐른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올 텐데, 현재 분위기를 보니 그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가 정말 많을 듯하네요. 꼭 법적 조치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지난 다섯 달 동안 비밀 유지 서약을 어긴 이가 박주호 한 명만은 아니라 그런지, 수많은 이름들이 미디어를 장식한 바 있습니다. 뒤가 아닌 대놓고 말한 박주호 한 명만 잡을 게 아니라 모두 색출하길 바랍니다.
궁색하게 비밀 유지 서약을 트집을 잡은 대한축구협회에 꼭 전하고픈 조언이 있습니다. 박주호의 영상에서 소위 ‘킬 포인트’는 홍 감독의 선임 소식을 전혀 몰랐다는 박주호의 반응입니다. 그 반응은, 홍명보 감독 선임 이틀 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절차적 정당성’에 상당한 결함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뉴시스
사실 전력강화위원회에 남은 다섯 명의 위원에게 임의로 감독을 선택하겠다는 걸 동의를 받았다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의 말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전력강화위원장이든 대행이든 위원들의 일임을 받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면 이렇게 5개월이라는 시간을 끌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풋볼 보헤미안은 이렇게 쉽게 뽑을 감독이었는데 왜 그렇게 시끄러운 다섯 달을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부에 정보 노출이 되는 게 두려웠다? 그걸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아닐까요? 홍명보 감독을 뽑으려고 했다면, 적어도 전력강화위원회를 한 번 더 소집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추인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박주호처럼 갑작스러운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나오지 않을테니까요.
또 한 가지, 이런 난맥상이 전력강화위원회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해 3월 승부조작 사면 시도 사건 당시 이사회가 해체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사회를 구성했던 대부분의 멤버들은 억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공지 없이 다들 현장에서 접하고 시쳇말로 ‘어어~’ 하다 가담한 꼴이 되었으니까요.
2023년 3월 사면철회 관련 이사회 풍경. 이후 일부 집행부를 제외한 이사들이 총사퇴했다. @풋볼 보헤미안
그 상황에서도 재빠른 대응을 한 이는 의로운 이가 되었고, 본의든 아니었든 그 분위기에 눌려버렸던 이는 비겁한 일에 가담한 악인 꼬리표를 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사회는 한국 축구를 위한 건강한 제언이나 치열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결정한 일을 승인하게끔 하는 장치였을 뿐입니다. 이사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그들을 통해 뭔가 하려는 요식적 절차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이사들은 그때 사면 번복 후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책임을 졌는데, 정작 그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집행부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았습니다. 지금이야 다 끝난 얘기가 되었지만, 그때 몸담았던 많은 이사들이 졸지에 ‘한국 축구의 해악’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던 그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한 박주호처럼, 그들 역시 한국 축구에 보탬이 되고 싶어 이사 제안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거수가가 되고 싶은 이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승부조작 사면에 찬동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그랬던 분위기, 어째 지금 전력강화위원회와 비슷하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정몽규 회장과 집행부가 대놓고 협회를 사유화하는 게 뒷말이 나오지 않을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가 상처받고 판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차피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면, 괜히 그들을 불러서 거수기 세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들 바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방패막이 거수기 세워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시고 그냥 혼자 책임지며 하셨으면 @풋볼 보헤미안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8일 대표팀 감독 선임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을 임명했음을 공식화한 바 있습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홍 감독은 강한 어조로 대한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을 비판하며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알듯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 후, 홍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 가장 유력한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였습니다. 본인이 직접적인 제안을 들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후보로 거론되었고, 홍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통해 관심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가장 최근 인터뷰에서는 “울산 팬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까지 남겼습니다. 그랬던 홍 감독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3자 시각에서는 엄청난 반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마 그를 지지했던 울산 HD FC 팬들에게는 큰 충격과 배신감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어떤 방법으로 홍 감독을 설득했는지는 차치하겠습니다. 과정이 어찌되었든 홍 감독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남겼던 여러 언행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의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를 언급하며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했는데, 정작 본인도 그 학습 효과를 무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이 학습 효과는 홍 감독의 축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본인 스스로가 더 뼈에 새겼어야 했던 것들입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기자회견에 임한 홍명보 감독 @풋볼 보헤미안
시간을 되돌려봅시다.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홍 감독은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을 선발해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하며 확고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박주영을 선발한 것은 큰 논란이 될 만한 일이 아닙니다. 1982년 FIFA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엔초 비아르초트 이탈리아 감독이 토토넬로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2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 파올로 로시를 선발해 월드컵 우승을 이룬 사례도 있습니다. 로시는 아예 득점왕까지 차지했죠. 아무리 좋지 않은 여건에 놓인 선수라도 그의 실력을 믿는다면 감독은 그 선수를 선발할 수 있습니다. 선수 선발은 어찌되었든 감독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을 선발했을 때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홍 감독이 소속팀에서 정기적으로 출전하는 선수에게만 대표팀의 문호가 열려 있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홍 감독은 본인의 선수 선발 원칙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런데 박주영을 선발한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뽑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의리 축구’ 논란이 시작되었고, 이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 감독의 팀을 침몰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선발과 관련한 입장 표명 @JTBC 캡쳐
브라질 월드컵을 현장 취재했었기에 그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당시 홍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홍 감독이 쓸데없이 자신의 선발 원칙을 공언하며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선수를 선발할 생각이었다면 그 기준을 밝히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네, 제가 원칙을 깼습니다”라고 했던 홍 감독의 말은 원칙을 깨도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 위함이었겠지만, 그간 ‘원칙주의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홍 감독에게는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겠지만 ‘거짓말쟁이’라는 나쁜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결정적 빌미가 됐으니까요.
시간이 꽤 흐른 후, 홍 감독에게서 당시 박주영 선발의 진짜 이유를 듣고 나니 축구적 시각에서는 합당하게 여겨졌습니다. 홍 감독은 2014년 3월 그리스 원정 평가전에서 박주영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습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박주영을 불러들이지 않다 그리스전을 통해 정말 마지막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박주영이 그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에 홍 감독은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선수가 경기를 통해 가치를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홍 감독이 쌓아올린 원칙의 장벽은 박주영이 넣었던 그 한 골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와 팬들은 대표팀의 부진을 비난하며 홍 감독의 커리어에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홍명보 울산 감독과 조현우 @풋볼 보헤미안
이번 상황에서 홍 감독을 변호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팬들에게는 의리가 중요하겠지만, 축구 비즈니스에서 이와 같은 스탠스 변화는 흔한 일입니다. 홍 감독이 협회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시즌 중 팀을 비우고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축구판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케이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안 해도 될 공언 때문에 ‘의리 축구’ 프레임에 갇혀 괴로운 시기를 보냈던 아픈 경험을 가진 홍 감독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렸던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확언에 가까운 말을 남기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조심했더라도 비판받을 소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년 전 비판을 받았던 잘못을 반복하며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홍 감독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아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니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단 아직 홍 감독의 입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추후 있을 그의 인터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