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는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저는 저한테 계속 질문을 했고 거기에는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는 두려움 그게 가장 컸고요. 또 어떻게 보면 이게 제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이라는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제가 예전에 실패를 한 번 했었던 그 과정과 그 후에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반대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뭔가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이임생 위원장을 만나고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뇌하고 저한테 있어서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습니다. 제가 대표팀을 하지 않는다고, 왜 저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10년 만에 간신히 이제 조금 재미있는 축구도 하고 선수들과 또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가는데 결과적으로는 저를 버리지 않으면 저는 지키고 싶었지만, 저를 버리지 않으면 여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서 저는 그 정말 긴 잠을 못 자면서 생각했던 건…,,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가 우리 팬들한테 가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부분에 제가 마음을 바꾼 상황입니다.” - 2024년 7월 10일 홍명보 감독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홍명보 감독이 지난 7월 10일 하나은행 K리그1 2024 광주 FC전 직후 밝힌 대표팀 감독직 수락 이유입니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울산 팬들은 안심해도 된다”라는 멘트까지 남겼던 홍 감독이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몰렸고, 그래서 직접 밝히는 소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 감독이 직접 설명하면 상황이 수습될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후폭풍이 진행 중입니다.
일단 직접 밝힌 이유를 들어보고, 하루 종일 그의 멘트를 곱씹어봤습니다. 즐겁고 안정적이었던 울산 사령탑을 하던 자신을 버렸고, 이를 통해 지금껏 쌓아온 홍명보라는 인물상도 버렸다. 오직 대한민국 축구만 남았다는 말이 모르는 이들에게는 비장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말 속에는 당위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울산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오랜 꿈이었던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명예 회복 기회가 사실 간절했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솔직하다는 말이라도 들었을 텐데 이번 기자회견은 아쉽습니다.
그릇된 말이 모든 걸 망칩니다. 1970년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차드 닉슨이 임기 도중 하야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닙니다. 물론 정적을 겨냥한 도청이라는 것도 엄청난 일이겠지만, 닉슨의 대외적 평판과 신뢰도 추락을 불렀던 건 바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게 선의였던 악의였던, 본의가 있던 본의가 아니었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었기에 속았던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으로는, “세상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미안하지만 이해해라”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힘듭니다.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니까요.
그래서 홍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은 오해하는 이들이 없도록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1주일 전 울산 팬들을 모두 안심시켰던 발언을 한 직후라 더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자회견은 좀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꽤 길게 마음을 바꾼 이야기를 설명했지만, 저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하고 싶었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홍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뿐만 아니라 축구계 중진들, 그러니까 1990년대에 현역으로 활동했거나 2002년 월드컵 때 최고참이었던 세대들이 한국 축구가 위기에 놓였을 때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남기는 말이 어째 대동소이합니다.
“많은 비판을 받겠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서, 축구로 받은 사랑을 축구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라는 말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옵니다. 지난 3월 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았던 황선홍 당시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14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며 혜택을 받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황 감독뿐만이 아닙니다. 홍명보 감독도 10년 전에 같은 취지의 말을 했으며, 신태용 감독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비슷한 이유를 내놓았죠.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주변에서 ‘독이 든 성배’이며 절대 좋은 제안이 아니니 받지 말라고 했음에도 제안을 수락했다는 후일담도 똑같았습니다.
대표팀 감독은 그 나라 축구계의 만인지상이라는 상징성을 지녀서 그런지 ‘절대 반지’처럼 끼고 싶은가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사명감도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명감, 저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반대하는 나쁜 상황, 모두가 받으면 안 된다는 나쁜 제안이라는 이야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홍 감독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홍 감독은 이미 그런 아픔을 10년 전에 겪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거센 비판이 대표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때 그 비판 속에서 내부에서 똘똘 뭉쳐 결속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대표팀을 향해 외부에서 날아드는 타격은 말처럼 견디기 쉬운 게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대표팀은 응원받는 팀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성공을 다질 수 있습니다. 어디 한번 지켜보자는 식으로 지켜보는 분위기 속에서는 말처럼 제 역량을 내기도 힘들고, 설령 조그마한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인정받을 수도 없습니다.
10년 전 홍명보호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불과 얼마 전 클린스만호가 그랬었습니다. 상황이 어찌 됐든 결과만 내면 된다? 축구는 늘 결과론에 수렴하기에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결과를 내기 힘듭니다. 어디 두고 보자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을 이들이 감독과 선수들이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이해해 줄까요? 애당초 비토 분위기인데,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홍 감독이 정녕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면, 그리고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정말 성공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번 제안은 피했어야 합니다. 홍 감독은 적정한 타이밍에 대단히 좋은 명분으로 대표팀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10년 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게 홍명보 감독이 일주일 전에 얘기했던 학습효과가 아닐까요?
대한축구협회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에게 십자가를 짊어져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는데, 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그저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됐든 이제부터는 매 순간이 살얼음판일 것입니다. 당장 9월부터 진행될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홍명보 감독에게 가장 많은 비난이 쏟아질 겁니다. 10년 전에는 젊은 지도자였기에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홍명보 감독이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 홍명보는 없고 대한민국 축구만 남았다? 55세 홍명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챙겼어야 했던 건 대표팀도, 울산도 아니라 홍명보였어야 했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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