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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전 이후 이장관 감독의 모습 @풋볼 보헤미안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이장관 전남 드래곤즈 감독의 성품은 정말 온화합니다. 현역 시절부터 늘 웃으며 팬들을 응대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그 자세는 변함이 없습니다. 팬은 물론, 프런트나 기자들에게도 진심으로 대합니다.

 

예를 들어, 이 감독은 전남 사령탑 부임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본인이 먼저 광양 지역 조기축구회를 찾아 연고지 축구팬들과 교류하려고 했습니다. 프로축구단이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더 열심히 교류하면 프로로서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또, 성적이 좋다면 더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20일 부산 아이파크전 2-3 패배 이전까지 11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며 FC 안양과 함께 2024시즌 K리그2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전남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남의 홈 관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지금, 그는 기뻐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배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처럼 승승장구하는 현실 때문에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요?

 

“저희들은 꾸준히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언급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관심 받지 못하는 우리 팀, 관심 받지 못하는 우리 스태프, 저 포함해서 관심 받지 못하는 우리 선수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끈끈한 힘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2위를 달리고 있지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자극이 됩니다. (중략)”

 

“비록 오늘 2-3으로 졌지만, 선수들이 그래도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건 큰 힘이 됩니다. 아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걸 얘기했지만, 우리 지역민들의 사랑을 대신 더욱 많이 받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미디어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지역의 많은 분들이 우리를 주목해주시고 있으며, 많은 팬들이 우리 경기를 찾아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 더욱 지역 팬들과 함께하는 팀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지난 720일 광양 축구전용구장에서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전 이후 그의 소감 중 일부입니다. 참고로 경기 전에도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전남에 대해 좋은 성적을 내고 훌륭한 경기를 해도 관심 받지 못하는 팀, 주목 받지 못하는 팀이라고 말하며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취재하는 입장에서, 심지어 전남 드래곤즈에 자주 출입하고 관심을 가지는 입장에서 그의 말은 뼈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섭섭하다기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습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맹이 주관했던 K리그 동계 훈련 미디어 캠프. 구단별로 꽤 편차가 심했던 기억이… @풋볼 보헤미안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전남만의 일이 아닙니다. 남부권 클럽들의 홍보 관계자들은 좀처럼 찾아주지 않는 취재진들의 분위기에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남부 지역 클럽들이 수도권 팀에 비해 지리적 약점이 있어 미디어의 조명을 덜 받는다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유독 심합니다.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아예 기자가 없을 때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몇몇 구단 홍보 직원들은 기자들에게 와 달라며, 아마도 속이 무척 쓰릴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K리그1 다툼을 벌이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HD FC도 수도권에 비해 현장을 찾는 기자들이 극히 적은데, 하물며 K리그2는 오죽할까요? 그나마 전남은 최근 지역지 기자들이 의욕을 가지고 현장을 찾는다고 해 다행이지만, 일부 팀들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혹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기자들의 숙박을 지원해주던 구단의 홍보 정책이 사라지자 기자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말합니다. 기자 한 명이 현장을 찾는 데 따른 비용적 부담이 커지자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현장 취재 업무 지시를 하지 않거나 기피한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현장 취재가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기자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취재원과 교류하고 좋은 정보를 찾아 팬들에게 제공하는 전통적인 업무 방식은 이제 고지식한 일로 여겨지는 것같습니다. 경기 취재? 현장에서 경기를 보고 쓴 몇몇 기사를 우라까이(베껴쓰기)’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분위기도 있으며, 이런 기사들이 현장 기자들의 기사를 제치고 포털 뉴스 상단에 오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장 기자들의 의욕을 꺾는 상황이죠.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찾았던 어느날 @풋볼 보헤미안

또한, K리그 경기 취재보다는 커피 한 잔 하며 손흥민 외신 기사를 받아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기획 기사나 인터뷰로 승부를 보던 기자들이 제법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럴 에너지에 다른 것을 하라는 얘기죠.

 

파브리치오 로마노는 그래도 직접 취재해서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기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기자입니다. 그런데 로마노의 정보를 마치 올림픽을 하듯 1초라도 빨리 받아쓰는 것을 기자의 소양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발로 뛰어 취재한 K리그 기사보다 소셜 미디어나 해외 축구 사이트에서 긁어 온 기사가 더 잘 팔립니다. 그래서 발로 뛰어 취재하겠다고 하면 쓸데없는 회사 비용을 사용하는 '내부의 적'이 되는 기묘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요컨대 효율성 측면에서 현장 취재보다는 이런 기사가 더 낫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이미 자리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비단 풋볼 보헤미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깊은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미디어가 이런 상황이니 15년 전 허정무 감독이 전남을 이끌고 FA컵 우승했던 시절만 해도 광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기자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감독이 설령 K리그1 승격을 이루고 코리아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광양에 현장 취재 기자가 자주 찾아올까요? 안타깝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정상적이지도 않죠. 이 감독이 느꼈을 상실감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도 이런 미디어 환경이 과연 정당한지 회의감이 듭니다.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변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제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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