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휑한 산길에 한 폐가입니다. 지붕은 무너졌고, 외벽에는 총탄이 가득합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법한 이 건물은, 사실 위대한 축구 영웅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곳은 크로아티아 축구 영웅 루카 모드리치의 어린 시절 집입니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북부 지역에 자리한 벨레비트 산 근처에 위치한 곳인데요. 동네 이름도 신기하게도 모드리치(Modrici)입니다. 이곳에서 모드리치는 인생에서 지우고픈 아픔을 겪습니다.
때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1년 12월 8일.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참전한 폭력적인 세르비아 민병대가 이곳을 찾습니다. 세르비아 민병대들은 모드리치 마을을 습격해 미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크로아티아인들을 위협했습니다. 때마침 가축을 이끌고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던 모드리치의 할아버지가 그 민병대에게 붙잡혔고, 그는 다른 현지인 다섯 명과 함께 잔인하게 처형당했습니다. 민간인을 죽인 엄연한 전쟁 범죄였죠.
모드리치에게는 할아버지의 처형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습니다. 모드리치는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 스티페, 어머니 라도이카와는 떨어져 할아버지와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들은 인근 큰 도시의 니트웨어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드리치는 할아버지의 손을 타고 성장한 셈이며,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염소를 치는 목동으로도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잔인하게 살해당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그때 내 나이 여섯이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하거나 생각하고픈 시절은 아니다.”
모드리치는 이렇게 그 시절을 술회했습니다. 모드리치는 그의 부모가 머물던 인근 도시 자다르의 한 호텔에서 난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전기와 수돗물이 끊긴 최악의 여건이었고, 모드리치와 그의 여동생 야스미나에게는 총탄 소리는 그저 일상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드리치에게 축구는 희망이었습니다. 호텔 주차장 주변에서 작은 구멍이 뚫린 축구공을 차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무너진 호텔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항상 축구를 좋아했다. 신 가드에 늘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그려져 있었다. 호나우두를 정말 좋아했다. 전쟁은 날 강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에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잊고 싶지도 않다.”
모드리치는 자다르 연고의 NK 자다르 유스 팀을 통해 선수로서 입문합니다. 이후 디나모 자그레브 유스팀으로 이적했으며, 이때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3위 신화에도 결정적 역할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이제는 레전드 미드필더 반열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그 이상의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모로코를 꺾고 카타르 월드컵 3위에 올랐을 때 모습입니다. 모드리치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아버지 스티페와 격한 포옹을 하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전쟁은 가족과 행복을 앗아갈 정도 아픈 기억이었겠지만, 결국 그 힘든 시기를 겪어낼 수 있었던 것도 가족의 힘 덕분이었다는 걸 모드리치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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