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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8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풋볼 보헤미안

지난 5월 18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던 하나은행 K리그1 2024 13라운드 대전하나 시티즌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왔습니다.

인천이 1-0으로 이긴 이날 경기는 경기 내용과 승패보다는, 승부 외적인 요소 때문에 시선이 모였습니다. 이날 대전과 인천의 경기는 지난 11일 인천 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졌던 1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대결이 끝난 직후 일부 몰지각한 인천 팬들의 물병투척 사건으로 축구판 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난 뒤 치러지는 인천의 첫 번째 공식 경기였습니다.

인천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상벌위원회의 징계에 따라 벌금 2,000만 원에 향후 다섯 차례 홈 경기 응원석 폐쇄라는 징계를 받은 상태입니다. 이 징계의 경중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매우 큰 상황이지만, 여기서는 차치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사건을 일으킨 그들이 진심 어린 반성을 하는지 여부겠죠.

사실 그간 서포터스 문화와 역사를 살피면 물병 투척 혹은 관중 난동, 불법적인 버스 막기 등 여러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물병이었지만, 과거에는 악질적인 동전 던지기로 선수를 공격한 더 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서포터스가 한국 프로축구 분위기를 주도하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지만, 이처럼 어두운 면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징계가 떨어지면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징계는 구단이 대신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나몰라라 하거나, 우리 서포터스는 외려 먼저 공격받은 피해자들인데 세상이 몰라준다는 억울함을 표현하는 식이었죠. 이번에도 사고를 일으킨 일부 인천 팬들은 서울 골키퍼 백종범의 행동이 트리거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그런 생각은 억지라는 걸 어렵잖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구분하여 살아갑니다. 바깥에서 만난 누군가가 도발했다고 해서 주먹으로 대답하면 정당방위로 인정받을수 있을까 생각하면 열이면 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축구장은 치외법권이 아닙니다.

인천 팬들이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뿌린 전단지 @풋볼 보헤미안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인천 팬들이 이번 대전 원정 경기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일부 인천 팬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폭력은 응원이 아니다 #정신차려 파랑검정 이라는 현수막과 전단지를 뿌리며 이번 사건에 대해 반성하고 내부의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해서 그들이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뿌린 전단지에 적혀 있던 반성문의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인천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주일 동안 여러분이
어떠한 심경으로 지내셨을지 
그 쓸쓸함을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받기 어려울 만큼 
크게 상처 난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심심한 존경과 감사의 말씀
먼저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죄송스럽게도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과를 돌아보며
치부를 드러내 보려 합니다. 
우리를 상처받게 한 이들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응원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들은 도발한 상대 팀 골키퍼를 향해
물병을 던졌다고 말하지만,
상대 팀 FC서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선수들도 날아드는 물병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막았습니다.
그 만행에 깊은 상처를 입은 건, 
양 팀을 사랑하는 
진짜 팬들이었고, 
축구를 사랑한 어린이들이었으며, 
K리그에 관심을 보여준
시민들이었습니다.

금번의 사태는
전례 없이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20년간 인천을 응원하고
K리그를 보면서 
이러한 사건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제게도
이러한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추하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통제를
벗어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비록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인천 팬 중 일부의 과한 호승심과
폭력성은 리그에서도 악명 높으며, 
'개포터'라 불리는 그들은
기피의 대상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진짜 지지자’라
자칭한 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엠블럼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머플러를 매며 
기물파손과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요? 
인터넷을 켜고 이러한 글을 올립니다. 
“또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것이
타인의 잘못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니
괜찮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 조직은
자정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침묵했습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괜한 다툼이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인천의 이름이
더러워졌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목소리를 낼 때입니다. 

“당신들의 행위는
응원이 아니라 폭력이다.”

“당신들의 비뚤어진 사랑이
구단과 선수들, 팬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돌아보라.” 

그것으로 그들에게,
K리그 팬들에게,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보여줍시다.
그들이 들렸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인천 팬이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폭력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인천 팬들은 더 나아진
응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천 팬 여러분,
변화하고 싶으십니까?
이러한 사태들이
지긋지긋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나설 때입니다.
뒷면의 해시태그를 들어
찍은 인증사진을 찍어주세요. 
경기장의 다른 팬들에게 보여주세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증명해 주세요.

#폭력은응원이아니다.
#정신차려파랑검정

Ultras Coast

여러분들은 인천 팬들의 사고 이후 이런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사고를 일으킨 몰지각한 이들이 모든 인천 팬들이 아니듯, 이처럼 진심을 담아 반성과 자성을 얘기하는 팬들 역시 모든 인천 팬들의 메시지는 아닐 수 있습니다. 혹자는 서포터스의 그룹 내부의 주류가 아닌 이들이 주류인 이들을 이번 사고를 빌미로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모든 걸 떠나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천 팬도 아니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인천을 전담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들의 내부 사정을 모릅니다.

그래도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은 설령 그게 모든 인천 팬들의 메시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함께 개선해나가자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긍정적인 스노우볼을 일으켜 기분 좋은 효과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추악했던 이번 사고 이후 얻어가는 자그마한 가르침 덕에 훗날 K리그의 환경이 개선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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