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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호주 SBS

풋볼 보헤미안입니다.

 

다가오는 9월부터 열리게 될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A매치에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팀과 첫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바로 95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최종예선 B그룹 첫 경기의 상대 팔레스타인인데요.

 

객관적 전력상 한국이 크게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경기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승패 여부보다도 이 팀의 한국 원정 자체에 더 관심이 갑니다. 중동 정세와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팀이 현재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는 게 신기한 상태니까요. 팔레스타인은 다른 나라들처럼 참가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Midjourney Ai

팔레스타인에게 축구가 가진 의미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일까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곳에서 스포츠는 사치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 빈곤, 갈등, 이주라는 비극들이 결합되어 축구가 점점 덜 중요해지고, 거의 무의미한 여가 활동처럼 여겨지게 만드니까요. 생존의 문제는 축구보다도 훨씬 더 절박한 법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축구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스포츠는 정말 어두운 환경에서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팔레스타인이 필리핀을 꺾고 2006 AFC 챌린지컵에서 우승했을 때, 가자 지구에서는 불꽃놀이가 터지고 거리 파티가 열리며 축제가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안으로 몰려들어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죠.

 

이런 걸 보면 축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축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탈출구를 제공하며, 팀의 성공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기쁨을 주고, 그들이 매일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대표팀이 국가 독립을 위한 오랜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지난 2011년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동했던 나딤 바르구티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은 축구팀 덕분에 팔레스타인을 알게 됩니다. 축구는 우리가 인간임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의 집단 정체성을 대표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홈 구장 파이살 알 후세이니 스타디움 ⓒX

떠돌아다니며 축구 경기를 치르는 것도 힘든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공식 홈 구장으로 지정된 서안지구 파이살 알 후세이니 스타디움은 2000년에 빚어졌던 제2차 인티파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주둔했던 땅 위에 지어졌습니다. FIFA도 자금을 지원하며 팔레스타인이 보다 좋은 여건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장은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에게 진정한 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팔레스타인의 A매치는 남녀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곰곰 그들의 과거를 살피면 안방은커녕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46, 팔레스타인 선수단은 2006 FIFA 독일 월드컵 아시아 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 때가 그랬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대만을 8-0으로 격파하고 이라크와 1-1로 비기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직전에 이스라엘 정부가 선수단의 출국을 막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로 급조된 팀으로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0-3으로 패배했으며,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에 지며 결국 예선 탈락했습니다. 사실 이런 출국 거부 사태는 팔레스타인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2006년에도 출국이 거부되면서 싱가포르와의 예정된 경기를 취소해야 했고, 2008 AFC 챌린지컵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평가전조차 치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스라엘은 선수단만 막은 게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축구협회 국제부 담당 직원의 입출국을 제한했으며, 반대로 FIFAAFC의 기술 강사들의 팔레스타인 방문도 종종 막았습니다. 구실은 팔레스타인 과격단체의 테러로 내세웠는데요. 이렇다 보니 팔레스타인은 국제대회에 나설 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첫 메이저 대회 본선인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당시에는 출국 비행기 안에서 이스라엘 정부 요원이 갑작스레 들이닥칠까봐 벌벌 떨었다는 얘기도 있죠.

 

상황이 팔레스타인은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래터에게 중재를 요청하며 축구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브릴 라주브 팔레스타인 회장은 지난 2014FIFA 총회 당시 단상에 올라 이스라엘축구협회 회장을 불러내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총회에서 이스라엘 제명을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죠. 블래터는 이스라엘 축구협회에 대한 제재를 촉구하는 팔레스타인의 요청을 거부했거든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사실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영토라 여겨지는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를 오가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 곳을 오가려면 무조건 이스라엘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선수 및 팀의 자유로운 이동이 되지 않으니 리그도 양분되어 운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축구 발전을 이룰 수 없었죠.

 

선수들이 죽거나 구속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2004년 당시 최고의 미드필더였다는 타리크 알 쿠토는 이스라엘 방위권에 의해 사망했으며, 아이만 알쿠르드, 와제 모스타헤, 샤디 스바케는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3주간 양측 충돌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아헤드 자코트 역시 2012년 자택에서 이스라엘군의 포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죠.

 

마흐무드 사르사크는 이슬람 지하드 운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3년 동안 수감되었고, 장기간의 단식 투쟁과 국제적인 압력으로 겨우 석방되었습니다. 지야드 알코드의 집이 파괴되었고, 오마르 아부 루웨이스는 2012년에 테러리스트 셀의 일원으로 지목되어 억류되었으며, 사마 파레스 무하메드 마라바는 하마스의 운반원으로 고용되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팀 시설도 파괴되었는데, 20064월에 폭격을 당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경기장은 현재 경기장 중앙에 거대한 분화구가 생겨 있습니다. 심지어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외국인 지도자도 도망쳤습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당연한 반응이죠.

지난 8월 14일 라주브 회장의 구금 소식을 알린 쿠웨이트 매체 <알 세야사흐>

선수단과 협회를 향한 이스라엘의 방해와 탄압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816일 지브릴 라주브 팔레스타인 축구협회 회장이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구금되고 여권을 빼앗겼습니다. AFC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축구협회 회장이 구금되고 여권을 빼앗긴 것을 강력 규탄한다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주브 회장은 팔레스타인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인 이번 한국 원정에 함께 하지 못하고 이스라엘군의 삼엄한 감시를 받는 걸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아시아 축구에서 가장 큰 대회인 이번 아시안컵에서 처음으로 연주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듣고 목이 메였다. 우리는 호주에 오는 것마저 힘들었다. 그래서 이 상황 자체가 우리에게는 승리다.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알렸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본선 때 팔레스타인 골문을 책임졌던 람지 살레의 말입니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월드컵 예선전을 준비하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경기마저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팀이 바로 팔레스타인입니다. 경기 승패를 떠나 경기에 임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성공이자 성취라고 앞서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대단한 건 이런 와중에도 팔레스타인이 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16강, 그리고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진출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국제 무대 도전 이야기는 사실 십수 년째 국제 축구계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는 이슈였습니다. 종교와 정치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스포츠에서만큼은 경계가 없었으면 합니다.

 

이상 9월에 서울을 방문할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였습니다.

풋볼 보헤미안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 ⓒ팔레스타인 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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